갈 길 먼 정의로운 전환…기후국회 ‘골든타임’ 지키나
3일 장기 감축경로 공론화위 첫 회의, 제대로 된 의제설정부터 … 기후부, 올해 상반기 중 탈석탄 이행안 수립 예정
탄소중립 사회로의 정의로운 전환은 과연 가능할 것인가.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국회 일 처리 속도에 대해 갑갑함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당장 발등의 불을 꺼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게 기후 국회의 현주소다. 2월까지 장기 탄소중립 감축경로를 법에 명시해야 하며 탈석탄에 따른 일자리 전환 문제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3일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기후특위)의 장기 탄소중립 감축경로 설정을 위한 공론화위원회가 첫 회의를 연다. 1월 30일 기후특위 관계자는 “실무는 국회입법조사처에 진행하지만 기후특위 입장에서는 시간이 빠듯한 상황이기 때문에 최대한 속도를 내려고 한다”며 “3일 열리는 회의는 어떤 사항들을 구체적으로 논의할지 등 의제설정부터 잡아가는 단계라는 표현이 적합할 것 같다”고 말했다.
2024년 8월 헌법재판소(헌재)는 청소년·시민단체·영유아 등이 제기한 헌법소원 4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ㆍ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2031~2049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관해 그 정량적 수준을 어떤 형태로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과소보호금지 원칙을 위반했다”며 “기후위기라는 위험 상황에 상응하는 보호조치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성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과소보호금지 원칙은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회는 2026년 2월 28일까지 관련 법 개정을 해야 한다. 헌재 결정 이후 2031~2049년 감축 경로를 설정하는 개정안들이 잇달아 발의됐다. 이소영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정혜경 진보당 의원 △서왕진 조국혁신당 의원 등이 각각 대표 발의를 했다. 위 의원은 기후특위 위원장이기도 하다.
◆”탄소예산 고려한 감축경로 재설계” = 기후특위는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을 위해 시민대표단의 공론화 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첫 시작 단추가 3일 열리는 회의인 셈이다. 기후특위와 국회입법조사처 등은 공론화위원회와 자문단 등을 구성해 시민들이 장기 탄소중립 감축 계획을 만들고 이를 통해 관련 법안을 개정할 방침이다.
1월 29일 권경락 플랜 1.5 정책활동가는 “좀 늦은 상황이긴 하지만 기존 정부 논의 과정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던 탄소예산 등 핵심 쟁점들이 심도 있게 구체적으로 다뤄졌으면 한다”며 “헌재 결정문의 핵심 내용들이 의제설정에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장기 감축경로 설정은 사실상 2040년과 204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결정한다는 의미도 된다”며 “일정에 쫓겨서 대충 만드는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법제연구원의 ‘법제연구 제 69호’에 실린 ‘미래세대를 위한 탄소중립기본법의 개정 방향과 향후 과제’ 특집 논문(박시원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헌재가 제시한 감축목표 심사 기준은 △전지구적 기여 몫 부합성 △미래세대 부담 전가 방지 △실효적 이행체계 △과학적 사실·국제기준 부합성 등 크게 4가지다. 이 기준을 충족하려면 감축목표가 파리협정 목표와 정합성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와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가 권고한 국제 평균 감축경로(2019년 대비 2030년 43%, 2035년 60% 감축)를 따라야 한다.
논문에서는 “대한민국 정부의 감축경로는 2018년부터 2050년까지 단순 선형 구조지만 국제사회는 초반 감축을 강화해 누적배출량을 줄이는 오목형 경로를 요구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2050년까지 배출 가능한 ‘탄소예산’을 먼저 설정하고, 그 한도 내에서 감축경로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025년 11월 11일에 열린 국무회의에서 2035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53~61%를 줄이겠다는 목표를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2025년 11월 브라질 벨렝에서 열린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서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국제사회에 선언했다.
이와 함께 김 장관은 COP30에서 석탄발전의 단계적 폐지 달성을 목표로 하는 국제협력 이니셔티브인 ‘탈석탄동맹(PPCA)’ 동참 의사를 밝혔다. PPCA는 석탄발전의 단계적 폐지를 목표로 정책교류와 기술적 지원 등 협력 플랫폼을 제공한다. 정부 지방정부 기업 등 180여개 회원이 참여 중이다. 대한민국은 충청남도 경기도 등 8개 지방정부가 가입한 바 있다.
◆”탈석탄 지역 지원에만 머물러서는 안돼” = 국제사회에 공언한 것처럼 이재명정부는 탈석탄에 대한 강한 의지를 출범 초기부터 밝혔다. 2040년까지 화력발전소를 전면 폐쇄하겠다는 국정과제를 발표하기도 했다. 당장 2025년 12월 31일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1호기가 30년 6개월 만에 가동을 종료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이다. 향후 본격화할 석탄발전소 퇴장과 새로운 산업으로 전환에 따른 노동 문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의지만큼 속도가 나지 않는 게 현실이다.
1월 30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4년 제22대 국회 출범 이래 발의된 석탄발전 폐지에 따른 지원 내용을 담은 법안들은 20건(지원을 위한 관련 기금 설치 근거 법안 개정도 포함)이 넘는다. 하지만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석탄화력 발전 폐지 시기가 앞당겨져 새롭게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여기에 기후부 출범에 따른 상임위 변동으로 인한 행정적인 절차도 더해졌다. 관련 법안 소관 상임위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로 달라졌다.
1월 29일 황인철 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운영위원장은 “탈석탄에 따른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에 대한 지원뿐만 아니라 △조기 탈석탄 시기 명시 △총고용 보장 △지역 전환 지원과 재원 마련을 법으로 규정한 ‘정의로운 탈석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정호 서왕진 정혜경 의원은 2025년 11월 26일 ‘석탄화력발전 중단과 정의로운 전환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발의 했다. 공공운수노조 등 노동·시민·사회단체 75곳이 참여한 ‘탈석탄법 제정을 위한 시민사회연대’는 석탄화력발전소 조기 폐쇄에 따른 노동자와 지역사회 보호를 위한 법제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국노총은 민주당과 함께 정의로운 전환대책 지원체계 확립을 위한 ‘정의로운 전환 대책 특별위원회’를 지난해부터 운영 중이다. 1월 28일 김주영 의원실 관계자는 “관련 법안들이 많이 나왔지만 재논의가 필요한 지점들이 있다”며 “늦어도 2월 둘째 주에는 관련 전문가들을 모아 토론회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부 차원의 구체화된 정의로운 전환 로드맵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정부 에너지 종합계획인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6~2040년, 전기본)과도 맞물리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 부분과 관련해서도 유기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전기본에는 재생에너지 원전 등 전원구성은 물론 석탄발전 단계적 폐지와 재생에너지 확대를 수용하기 위한 전력망 구축 계획 등이 담긴다.
기후부 관계자는 “당장은 동일 발전소 내 다른 업무로 바꾸거나 다른 발전소로 이전을 하는 식으로 노동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며 “전환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용역을 하는 등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기후부는 올해 상반기 중 석탄발전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이행안을 수립할 방침이다. 지역·근로자 지원을 위한 석탄발전 폐지 특별법안 발의도 연내 추진한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알기 쉬운 용어설명
■파리협정 =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채택한 기후변화협약이다.전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1.5℃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목표다. 선진국에만 감축 의무를 부과한 교토의정서와 달리 모든 국가가 자국 상황을 반영해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스스로 설정하는 상향식 방식을 채택했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 국제사회에 감축이행을 약속하는 구속력 있는 온실가스 감축목표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목표로 5년마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유엔에 제출해야 한다. 단 새로운 NDC는 기존 수치보다 높은 수준으로 설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