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외교장관 회담 결과서 ‘관세’ 빠져
미 국무부, 핵잠·대미투자 등 협력만 공개 … 정부, 외교통상라인 투입 총력전
한미 외교장관 회담이 ‘미래 협력 강화’ 메시지 속에 마무리됐지만 한국 정부가 가장 시급하게 풀려 했던 관세 문제는 미국 측 공식 발표에서 자취를 감췄다. 조 현 외교부 장관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3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무부 청사에서 회담을 갖고 양국 협력 의제를 논의했다. 회담 직후 미 국무부가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대 한국 관세 인상’ 관련 논의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민간 원자력 △핵추진 잠수함 △조선 △미국 핵심 산업 재건을 위한 한국의 투자 확대 등을 언급하며 “긴밀히 협력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루비오 장관이 “안전하고 회복력 있으며 다각화된 핵심광물 공급망 구축” 과정에서 한국의 리더십에 사의를 표했다는 내용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 재확인, 한미일 3국 협력 강조도 포함됐다.
그러나 관세 이슈가 결과문에서 통째로 빠지며 ‘공백’이 발생했다. 관세 문제는 이번 회담의 배경이자 한국 정부가 총력 대응 중인 최우선 과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SNS를 통해 한국 국회의 ‘대미투자특별법’ 입법 추진 상황을 문제 삼아 한국산 자동차·목재·의약품과 기타 상호관세(국가별 관세)를 기존 15%에서 25%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을 특정한 만큼 단순 경고가 아니라 현실적 통상 리스크로 받아들여졌다.
한국 정부는 트럼프 발언 직후부터 ‘산업→통상→외교’ 순으로 고위급 인사를 연쇄 투입해 관세 인상 저지에 나섰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말 미국으로 급파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등 트럼프 행정부 고위 인사들과 면담을 진행하며 관세 인상 계획 철회 또는 보류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도 미 정부·의회·산업계 인사들을 폭넓게 접촉하며 설득전에 나섰다.
이번 조 현 장관의 방미는 관세 문제를 외교 의제로 격상시키는 조치로 평가됐다. 조 장관은 출국 전 “우리 국회 절차에 따라 양 정부 간 합의된 것이 입법으로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후퇴나 지연이 아니라 합의 이행을 국내법으로 제도화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미 국무부가 공식 발표에서 제외한 것은 관세가 트럼프 행정부 ‘협상 지렛대’로 운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해석된다. 관세 정책은 국무부보다 백악관과 USTR(무역대표부)이 주도해 온 영역이며 외교 발표문에 관세 협상 내용을 담는 순간 협상 여지가 줄거나 상대국에 ‘성과 신호’를 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미 국무부가 이번 발표에서 “미국 핵심 산업 재건을 위한 한국의 투자 확대”를 명시한 점도 주목된다. 관세가 투자·산업 협력과 결합된 ‘패키지 거래’ 형태로 작동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결국 이번 한미 외교장관 회담은 관세 현안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음을 역설적으로 확인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 정부는 향후에도 통상(상무부·USTR)과 외교(국무부·백악관) 채널을 병행 가동하며 △특별법 입법의 성격(합의 이행) △대미투자 및 핵심광물 공급망 기여 △관세 인상이 동맹 신뢰에 미칠 파장 등을 종합적으로 제시해 ‘관세 보류 또는 조정’을 끌어내는 데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부 고위급 인사들이) 미국에서 다각도로 협의중”이라면서 “차분한 기조로 대응한다는 기본 입장에는 변함 없다”고 밝혔다.
정재철·이재호·김형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