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입법 독촉에도 정쟁에 갇힌 여야
여·야 극한 대립에 정부제출 법안 처리율 25%
비쟁점 법안도 본회의 문턱 앞에서 ‘멈춤’
이재명 대통령과 김민석 국무총리가 입법부에 국정 과제와 연결된 법안 통과를 강도 높게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거대 양당은 극단적 대치와 내부 리더십 위기로 입법 성적이 크게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6.3 지방선거가 넉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거대 양당 간 격돌은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아 이재명정부의 핵심 법안 처리는 계속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 과반 의석을 확보한 여당의 입법 협상 능력이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1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 대통령 취임 이후 정부가 제출한 법안은 모두 74개이며, 이 중 19개만 처리됐다. 처리율이 25.7%에 그쳤다. 4개 중 1개만 입법이 이뤄진 셈이다. 상대적으로 속도가 빠른 의원 입법으로 정부안을 내놓기도 했지만, 대부분 쟁점 법안으로 분류돼 처리가 지연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상황이다.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의원들이 낸 법안 5836건 중 처리된 것은 13.6%인 795건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까지 통과됐는데도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의안이 104건이고, 이 중 법안이 83건인 것으로 알려졌다.
본회의에 부의됐지만 처리되지 못하고 있는 법안에는 많은 민생 법안들이 포함돼 있다. 피상속인의 직계존속뿐만 아니라 직계비속·배우자 등 모든 상속인이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하는 등의 경우에는 상속권을 상실케 한 민법 개정안이나 고령층의 주거 안정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의료, 교육, 문화, 체육, 복지, 관광, 지원, 환경, 공원녹지 등 다양한 생활 편의시설을 집합적으로 설치한 은퇴자마을을 조성하도록 지원하기 위한 은퇴자마을 조성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이 거대양당의 무관심 속에 수개월째 방치돼 있다.
기숙사비 납부에 대한 학생들의 선택권을 확대하고 기숙사비를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새롭게 담은 고등교육법 개정안, 청년 상한 연령을 34세로 확대한 청년고용촉진 특별법 개정안, 기후 위기에 따른 국가 기상재해 대응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첨단 수치예측 기술의 활용·보급을 전담하는 연구개발 기관의 설립 근거를 마련한 기상법 개정안도 발목이 잡혀 있는 상황이다. 필수의료인력 양성, 지역필수의료특별회계 설치 등을 담은 필수의료 강화 지원 및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를 위한 특별법안, 정부의 분기별 예산배정계획을 국회에 제출토록 의무화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 지방소멸대응을 위한 제도 및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재정지원 사업까지 확대하기 위한 지방자치단체 기금관리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 국가와 지자체의 디지털 취약계층 대응 지원 통로를 열어주려는 디지털포용법 개정안, 반도체 산업 전반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을 강화하고 반도체 특구 지원 등을 규정한 반도체산업 생태계 강화 및 지원을 위한 특별조치법안 등도 본회의 문턱 앞에서 멈춰 서 있다.
여야는 12일 비쟁점 법안을 중심으로 본회의에 상정할 예정이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우선 12일 본회의에서 여야가 합의한 수준에서 법안을 처리하려고 한다”면서 “현재 본회의에 부의돼 있는 83개와 법사위에 올라와 있는 50개 정도의 법안 중 여야가 특별한 이견이 없는 법안 중심으로 100개 이상을 통과시키는 게 목표인데, 비쟁점 법안만 통과시키기로 해 추가 협상 결과 몇 개나 통과시킬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이재명정부의 국정 과제와 연결돼 있는 법안들은 대체로 쟁점 법안으로 분류돼 있어 162석을 확보하고 있는 여당이 이 대통령이 주문한 입법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집권 2년 차로 접어들었지만 법안 처리가 늦어지면서 이재명정부의 국책사업들이 빠르게 진행되지 못하자 이 대통령이 수차례 입법부의 법안 처리 속도를 문제 삼고 있다.
이 대통령은 전날 국무회의에서 “외국과의 통상 협상 뒷받침, 행정 규제 혁신, 대전환을 위한 동력 마련 등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경쟁력 강화를 위한 각종 입법이 참으로 절실하다”며 “현재와 같은 입법 속도로는 국제 사회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27일 국무회의에서도 이 대통령은 “지금 국회가 너무 느려서 일을 할 수가 없는 상태”라고 토로한 바 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