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섬백길 걷기여행 41 무의도 호룡곡산길

실미도의 어미섬에 알프스 같은 산길

2026-02-13 13:00:11 게재

북파공작원들을 다룬 영화 ‘실미도’의 무대가 됐던 섬이 있다. 실재하는 섬, 실미도다.

무인도인 실미도는 무의도(인천 중구)의 부속 섬인데 썰물 때면 하나로 연결된다.

실미도의 어미섬 무의도에는 서해 알프스같은 산길이 있다. 사진 섬연구소 제공

1971년 8월 23일, 인천 실미도에 있던 684부대 북파공작원 24명은 기간병 18명을 살해한 뒤 무기를 들고 탈영했다. 북파공작원들은 버스를 탈취해 청와대로 향했다. 서울 영등포 유한양행 앞까지 진격해 진압군과 교전을 벌이던 북파공작원들은 수류탄을 터뜨려 자폭했다. 20명이 죽고 4명이 생존했다. 하지만 생존자 4명도 이듬해인 1972년 3월 서둘러 사형이 집행됐다. 언론에는 단 한 줄도 보도되지 못하고 묻혀버렸다.

북파 부대인 684부대가 탄생한 배경은 1968년 벽두에 있었던 이른바 1.21 사태다. 북한의 특수부대인 124군 부대원 31명이 대통령 박정희를 살해하기 위해 남파됐고 이들은 감시망을 뚫고 청와대 인근 세검정까지 침투에 성공했다.

하지만 124군 부대원들은 국군에게 제압당해 김신조를 제외한 전원이 살상당했다. 1.21 사건에 대한 보복을 목적으로 탄생한 것이 684부대였다.

부대는 북한의 124군 부대원과 같이 31명으로 구성됐으며 평양에 침투해 주석궁의 김일성을 암살하는 것이 목표였다.북파공작원들은 실미도에 마련된 훈련장에서 3개월 만에 인간 병기로 거듭났다. 기간병이 1대1로 붙여졌고 훈련은 실전처럼 이루어졌으며 훈련과정에서 7명이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북한 침투 훈련을 마치고서도 부대원들은 침투 명령을 받지 못하고 실미도에서 3년 4개월을 대기 상태로 있어야 했다. 동서냉전의 벽이 허물어지던 국제정세의 변화 때문이었다.

1971년 4월 미국 탁구선수단의 중국방문과 뒤이은 키신저와 닉슨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으로 세계는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김일성 암살을 위해 만들어진 684부대는 박정희 정권에 부담스런 존재였다. 정부는 이들 전원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제거 명령을 받은 기간병들은 오히려 북파부대원들에 의해 살해되었고 소위 실미도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 기간병 중에서는 단 6명만 생존했다. 이들의 증언이 백동호의 소설 ‘실미도’와 영화 ‘실미도’의 바탕이 됐다.

‘실미도 사건’은 정권의 필요를 위해서는 국민들의 생명마저 파리 목숨 취급했던 박정희 군사정권의 실체를 보여줬다. 사람들은 흔히 실미도 사건의 부대원들을 사형수로 오해한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으니 억울할 게 무어 있냐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684부대원들 대부분은 사형수와는 무관한 민간인이었다. 1968년 3월 충북 옥천의 한 마을에서 실종된 7명의 청년들 모두가 684부대원이었다는 사실이 2004년 국방부에 의해 확인되면서 그 실체가 드러났다. 684부대원 제거 명령은 박정희 정권의 국가 범죄임이 확인된 것이다. 국민의 안전보장을 존립 목적으로 하는 국가에 의해 자행된 범죄는 개인의 범죄보다 더 엄중히 단죄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단죄는 없었고 실미도 사건의 실체는 여전히 미궁 속이다.

안타까운 현대사의 무대. 실미도의 어미 섬 무의도에는 백섬백길 94코스 호룡곡산길이 있다. 7.2㎞의 산길은 서해의 알프스라 이를 정도로 아름답다. 트레킹 길에 실미도를 꼭 답사해 보길 추천한다.

백섬백길: https://100seom.com 공동기획: 섬연구소·내일신문

강제윤 사단법인 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