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살롱

노인인구 증가시대 최대 복병 ‘낙상’

2026-02-23 13:00:01 게재

“교수님, 그날 이후로는 혼자 밖에 나가는 게 무서워졌어요.”

70대 후반의 한 여성 환자는 겨울철 집 앞 계단에서 미끄러진 뒤 고관절 골절로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한달 넘는 입원과 재활치료를 거치며 보행속도는 눈에 띄게 느려졌고, 이전에는 당연했던 혼자 장보기와 외출은 더 이상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다리가 아니라 자신감이 먼저 부러진 것 같다”는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노인의 낙상은 흔히 ‘운이 나쁜 사고’로 치부된다. 그러나 임상과 연구현장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은 낙상은 우연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이다. 나이가 들면서 근육량 감소와 근력 저하, 그리고 균형 유지 능력이 떨어지고, 외부상황에 대처하는 인지능력의 감퇴도 일어난다.

여기에 골다공증이 더해지면 낙상과 취약골절은 시간문제가 된다. 특히 고관절과 척추 골절은 단순한 외상이 아니라 노인의 삶 전체를 바꾸는 분기점이 된다.

또 다른 사례가 있다. 80대 초반의 남성 환자는 집 안에서 넘어져 척추 압박골절을 겪었다. 큰 수술이 필요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통증으로 활동량이 급격히 줄었고 몇 달 사이 근력이 빠르게 감소했다. 낙상을 경험한 후 넘어질 염려로 매우 제한적인 일상생활만 하다가, 결국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또다시 낙상을 경험했다. 첫번째 골절 이후 적절한 운동과 낙상 예방 관리가 이루어졌다면, 이 악순환은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노인 낙상은 운 나쁜 사고 아냐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약 4명 중 1명은 매년 한 번 이상 낙상을 경험하며 한번 넘어진 노인의 절반은 1년 안에 다시 넘어진다. 그 중 골절상은 5~10% 정도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략 매년 10만~20만명이 낙상 골절을 겪는 것인데, 문제는 이러한 환자수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고관절 골절을 겪은 노인의 상당수는 1년 이내에 이전 수준의 보행능력을 회복하지 못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망률이다. 고관절 골절 후 1년 내 사망률은 15~20%에 이르며 암보다 사망률이 높다. 낙상과 취약골절은 단순히 뼈의 건강문제가 아니라 노년기 건강의 총체적 위기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대응은 여전히 사후적이다. 넘어지고, 골절이 발생한 뒤에야 수술과 재활을 논한다. 그러나 낙상 예방의 핵심은 그 이전에 있다. 하지 근력과 균형 능력을 향상시키는 운동, 골다공증의 조기진단과 치료, 복용 약물 점검, 시력과 신경 기능 평가가 함께 이루어질 때 낙상 위험은 의미 있게 낮아진다. 특히 맞춤형 운동과 영양관리가 결합될 경우 이는 가장 비용 대비 효과적인 예방 전략이 된다.

최근 발간된 한 건강서의 제목이 ‘넘어지지만 않아도 오래 살 수 있다’(김헌경 박사 저, 2025, 헬스조선)이다. 낙상을 예방하는 운동과 생활습관이 곧 생존과 직결된다는 메시지로 낙상은 노년건강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 될 수 있다.

이제는 낙상 예방을 개인의 노력에만 맡길 수 없다. 노인 낙상과 취약골절을 예방하고 관리하기 위해 국가와 사회 차원의 전략은 무엇인가. 첫째, 지역사회 기반의 낙상 위험 선별과 낙상예방 프로그램을 표준화해야 한다. 어디에 살든 보건소 복지관 의료기관에서 동일한 기준으로 낙상 위험 평가와 예방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기관별로 따로 움직이는 구조로는 지속적인 관리가 어렵다.

둘째, 골절 이후 재골절을 막기 위한 ‘재골절 예방 관리서비스(Fracture Liaison Service, FLS)’를 전국적으로 확산할 필요가 있다. 한 번의 골절은 두 번째 골절을 예측하는 가장 강력한 신호이기 때문이다.

셋째, 통합돌봄 체계와의 연계가 필수적이다. 낙상은 주로 집과 일상공간에서 발생한다. 방문의료 및 재택관리, 주거 환경 개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활동량·균형 모니터링이 의료·돌봄 서비스와 연결될 때 낙상 예방은 현실이 된다. 이는 단순한 복지정책이 아니라, 고령사회에서 의료비 증가를 억제하는 가장 현명한 투자다.

노인 낙상 대응, 우리사회의 노화 준비 지표

노인의 낙상은 한 개인의 실수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노화에 대해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한번의 낙상을 막는 일은 골절 하나를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노년의 자립과 존엄, 그리고 삶의 시간을 지키는 일이다.

넘어지고 나서 대응하는 사회가 아니라 넘어지지 않도록 돕는 사회, 골절 이후가 아니라 그 이전을 준비하는 국가. 지금 우리가 선택해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임재영 분당 서울대병원 교수, 재활의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