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1600억’ 취소소송 정부 승소
영국법원 “국민연금, 정부에 종속 안돼”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와의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 취소소송에서 승소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약 1600억원의 배상 책임에서 벗어났다. 다만 사건은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로 환송돼 중재절차가 다시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23일 저녁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정부는 영국 법원에서 진행된 엘리엇과의 ISDS 사건 중재판정 취소소송에서 승소했다”고 밝혔다.
정부와 엘리엇과의 분쟁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서 시작됐다. 당시 삼성물산의 주주였던 엘리엇은 합병비율이 삼성물산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반대했으나 국민연금공단이 찬성 의결권을 행사하면서 합병이 성사됐다. 그러자 엘리엇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소위 ‘국정농단’ 사건을 배경으로 한 정부의 부당한 압력행사가 있었기 때문이고 이로 인해 1조원 이상 주가하락 손해를 입었다며 2018년 7월 ISDS를 제기했다.
PCA는 엘리엇측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2023년 6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배상원금 690억원과 지연이자 등을 지급하라는 결정을 내렸고 이후 배상원금은 판정문 정정절차를 거쳐 593억원으로 수정됐다. 올해 2월 기준 배상원금과 지연이자는 1600억원에 달한다.
한국정부는 이에 불복해 2023년 7월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중재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근거로 PCA가 관할권이 없는 사건을 판정했다고 주장했다. FTA규정상 ISDS를 제기하려면 투자자가 문제 삼는 행위가 국가기관에 의해 이뤄진 것이어야 하는데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정부의 조치로 볼 수 없다는 게 우리 정부의 논리였다.
영국 1심 법원은 한미 FTA 해석상 정부가 주장하는 취소사유는 적법하지 않다며 소송을 각하했지만 2심에서는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사건을 1심으로 돌려보냈고, 환송심에서 결국 승소했다. 영국법원은 △국민연금이 정부와 별개 법인격을 보유한 점 △공적연금 운용이 치안·국방 등 국가의 핵심 기능에 해당하지 않는 점 △국민연금의 일상적 의사결정이 정부에 완전히 종속되지 않는 점 등을 근거로 중재판정 중 국민연금이 국가기관임을 전제로 한 부분을 취소했다.
이번 판결로 정부가 엘리엇에 1600억원을 배상하라고 한 중재판정은 무효가 됐다. 다만 영국 법원은 사건을 PCA로 환송할 것을 결정해 최종 판단은 PCA가 다시 내리게 된다.
정 장관은 “정부는 원 중재절차의 서면·구술 공방 때부터 국민연금공단이 국제법상 국가기관이 아니라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개진했고 결국 받아들여졌다”며 “국민연금을 지켜낸 소중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해 11월에도 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의 외환은행 매각 관련 ISDS 중재판정 취소소송에서도 승소해 약 4000억원 규모의 배상책임에서 벗어난 바 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