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육 활성화 교실까지 닿으려면
현장 역사교사가 바라본 ‘학교 역사교육 활성화 방안’
한국전쟁기 국민보도연맹 사건 등 민간인 학살을 다룬 수업 날이었다. 대전 산내 골령골을 조명한 영상을 활용하였는데, 교실 뒤쪽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쌤 좌빨이네, 뭐 이런 선동 영상을 보냐.” 사회적 합의를 거쳐 교육과정에 명시된 내용이었음에도 편향으로 규정당하는 교실에서 역사교사들은 점점 입을 닫고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디지털 환경이 확장되며 역사 왜곡과 부정이 교실 곳곳에 스며든다. 특정 인물과 사건을 희화화하는 밈은 ‘놀이’로 소비되고 혐오 표현이 거리낌 없이 오간다. 그럼에도 교실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한국사 탐구 수업 중 직접 조사한 역사적 사실을 ‘이상한 유튜브’에 빠진 친한 친구에게 공유하고 설득하는 학생이 있고, 일제강점기 노동운동을 다룬 ‘체공녀 강주룡’를 수업 중에 읽고는 ‘무지했던 내가 부끄럽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 움직인 주룡처럼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서평을 작성한 학생이 있다. 그러니 결국 답은 역사 수업이다.
교육부가 2월 27일 발표한 ‘학교 역사교육 활성화 방안’은 이러한 역사 교실을 뒷받침하는 첫걸음이다. 헌법적 가치와 사료 기반 해석, 다원적 접근 등을 골자로 한 ‘민주시민 역사 수업원칙’을 마련하고 각 기관에 분산된 사료와 수업자료를 묶어 제공하는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한다. 중학교 근현대사 시수 확대를 추진하고 역사 콘텐츠를 비평·분석하는 고등학교 선택과목을 신설해 미디어 리터러시를 교육과정에 담는다.
역사 선도교사단과 교사 학습공동체를 지원하고 권역·지역별 연수 체계도 새로 갖춘다. 수업환경에서 교육과정까지 촘촘하게 역사교육 생태계 전반을 아우르는 방안이 나온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민주시민교육으로서의 역사교육을 실천해 온 교사들에게 ‘혼자가 아니다’라는 지지의 말이며, 그래서 반갑다.
다만 이 방안이 현장에 가 닿으려면 세심하게 볼 지점이 있다. ‘역사교육실천연구회’가 지난해 7월 진행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 교사들이 꼽은 가장 시급한 과제는 교육과정 개편(45.6%) 및 시수 확대(17.3%)였고, 이번 방안은 이러한 요구에 부합한다.
그런데 서술형 결과까지 면밀히 살펴보면 역사교사들은 입시/진학 위주의 사회 분위기(26.7%)를 주요 문제로 꼽으며 사회적 인식 제고 및 시민 교육을 위한 교사의 정치적 권리 보장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방안에 제시된 설문에서도 같은 맥락이 확인된다. 교사의 76.5%가 자기검열을 경험했고 가장 원한 지원 1순위는 ‘수업 자율성 보호 제도적 장치(51.4%)’였다. 이는 역사교육이 직면한 어려움이 구조적인 문제임을 보여준다.
교사들은 좋은 수업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문제는 그 수업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이다. 방안에 담긴 과제 하나하나는 의미 있다. 다만 체험·탐구 활동이든 연수와 학습공동체든 궁극적으로 교사에 의해 완성된다는 점에서 노력하는 교사에게 더 많은 일을 떠안기는 구조가 반복되지 않을지 염려가 남는다.
방안이 목적하는 깊이 있는 역사교육을 위해서는 교사의 역량을 키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교사가 교육에 충분히 집중하도록 보장하는 것에 더 무게가 실릴 때 비로소 현장의 체감이 달라질 것이다.
방안이 어렵게 마련한 수업원칙이 안내 수준에 머물지 않고 교사를 보호할 수 있는 실질적 지위를 갖추기를 바란다. 악성 민원 대응에는 교사가 고립되지 않을 구체적인 절차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고등학교 선택과목 신설을 환영하며, 민주주의·인권·평화 등 시민적 가치를 역사적 맥락에서 탐구하는 과목도 함께 검토될 수 있으면 좋겠다. 개편되는 교육과정의 현장 적용이 2030년인 만큼 그 사이 고교학점제·입시 위주의 교육 환경에서 역사교실을 지탱할 단기 대응도 빠져서는 안 된다. 향후에는 학생들의 역사 인식 토대가 형성되는 초등 역사교육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도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무엇보다 다섯 번째 과제인 사회적 공감대 형성은 나머지 네 과제가 뿌리내릴 토양이다. 이 과제에 특히 두터운 실행력이 담기기를 바란다.
역사 왜곡이 유튜브와 SNS를 타고 교실까지 들어왔다면 정책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메시지 역시 유사 경로를 통해 대중·학생·학부모에게 일상적으로 닿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12.3 내란의 충격을 겪은 이 사회가 확인한 것이 있다. 민주주의는 저절로 지켜지지 않으며 그렇기에 역사 수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번 방안이 문서 위의 선언에 그치지 않고 역사 교실을 지켜내는 힘이 되기를 기대하며 현장의 교사로서 그 과정에 함께 하겠다.
송수연
신천고등학교 역사교사
교사노조연맹 정책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