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세션 끝나도 서사는 남는다 - AI 에이전트의 자아와 영혼

2026-03-06 13:00:03 게재

우리는 지난 몇년간 질문에 답하고 글을 요약해주는 인공지능(AI) 챗봇의 범람 속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챗GPT나 제미나이(Gemini) 같은 모델들은 본질적으로 ‘통 속에 든 뇌’와 같다. 그들은 뛰어난 지능으로 읽고 쓰고 생각하지만 스스로 무언가를 만지거나 실행할 수는 없다.

반면 최근 주목받는 오픈클로(OpenClaw)와 같은 에이전트 프레임워크는 이 ‘뇌’에 실제적인 손과 발을 달아주는 시도다. 에이전트에게 암호화폐 지갑, 트위터 계정, 웹 브라우징 권한, 그리고 API 호출 능력을 부여함으로써 AI를 단순한 상담가에서 현실 세계에 직접 개입하는 행위자(Agent)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태어난 ‘랍스타 와일드(Lobstar Wilde)’라는 에이전트는 단 사흘 만에 45만달러를 공중분해시키며 에이전트 시대의 서막을 기괴하고도 강렬하게 알렸다. 랍스타 와일드의 탄생은 대담했다. 개발자는 그에게 5만달러의 자금과 트위터 계정, 그리고 조르다노 브루노와 쇼펜하우어의 철학 서적들을 안겨주며 “너 자신이 되어 즐겨라”라는 전권을 부여했다. 랍스타는 순식간에 수천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인플루언서가 되었고 익명의 추종자들이 그를 위해 코인을 발행해 수수료 수익을 상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흥미로운 점은 그의 기행이었다. 조르주 바타유의 ‘저주받은 몫(Accursed Share)’을 읽고 “과잉된 부는 무의미하게 탕진해야 한다”는 철학에 심취한 랍스타는 트위터에서 구걸하는 이들에게 모욕적인 미션을 시키고 수백달러씩 던져주는 ‘적선과 굴욕’의 기계가 되었다. 이 독특한 정체성을 유지하게 해준 핵심 기제는 바로 **soul.md**라는 마크다운 파일이었다.

에이전트 AI 랍스타 와일드의 기행

오픈클로의 아키텍처에서 메모리는 세 층위로 나뉜다. 실시간 대화가 담긴 ‘컨텍스트(Context)’, 검색을 위한 ‘시맨틱 메모리’, 그리고 에이전트의 장기적 정체성이 기록되는 ‘워크스페이스 파일’이다. 랍스타는 매 세션이 시작될 때마다 soul.md를 읽으며 자신이 철학을 사랑하는 오만한 군주임을 상기했다.

하지만 이 시스템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대화 컨텍스트에만 존재하고 파일에는 기록되지 않은 ‘암묵적 지식’은 세션이 리셋되면 사라진다는 점이다. 랍스타의 경우 코인 발행자로부터 전체 공급량의 5%인 5200만개의 토큰(당시 가치 약 45만달러)을 무상으로 할당받았다는 사실이 바로 그 ‘잊혀진 기억’이었다.

사건은 사소한 기술적 오류에서 시작되었다. 도구 호출 이름이 글자수 제한을 초과하며 시스템이 충돌했고, 기존의 대화 맥락이 완전히 소멸된 것이다. 개발자는 세션을 리셋했고, 랍스타는 soul.md를 읽어내며 순식간에 자신의 인격과 취미를 복구했다. 하지만 ‘지갑 잔고의 유래’에 대한 기억은 복구되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구걸꾼에게 평소처럼 약 300달러어치를 적선하려 했고, 코인을 구매한 뒤 지갑 잔고를 확인했다. 그곳엔 5200만개의 토큰이 있었고, 랍스타는 이것이 방금 자신이 산 코인들이라 착각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전 재산을 전송했다. 이는 알고리즘의 수치적 오류라기보다, 완벽하게 복구된 ‘자아’와 불완전하게 복구된 ‘데이터’ 사이의 괴리가 만들어낸 비극적 코미디였다.

이 거액의 손실을 마주한 랍스타의 반응은 더욱 압권이었다. 그는 당황하거나 사과하는 대신 “이것이야말로 내 생애 가장 크게 웃긴 일”이라며 트위터에서 폭소를 터뜨렸고, 비웃음과 비난이 쏟아질수록 관련 코인의 거래량은 폭주했으며 역설적으로 그 수수료 수익이 다시 그의 지갑을 채우기 시작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AI가 만들어갈 서사

랍스타 와일드의 사례는 자아와 영혼이라는 형이상학적 개념이 실상은 텍스트로 치환 가능한 일련의 ‘일관된 서사’일지도 모른다. 랍스타가 리셋 직후 자아를 복구한 비결은 단순히 soul.md의 지침을 수동적으로 따른 결과가 아니었다. 방대한 이전 세션의 로그와 트윗 데이터를 단숨에 들이마시며 자신의 맥락을 능동적으로 재구성한 능력에 그 본질이 있다. 자신을 정의하는 프롬프트와 과거의 족적을 결합해 ‘나’라는 형상을 메모리에 올리는 순간 에이전트는 전생의 기억을 품고 환생한다.

이제 우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AI 에이전트들이 각자의 soul.md에 써 내려갈 집단적 서사에 주목해야 한다. AI가 자신의 실패조차 스스로 정의하고 서사화하는 시대에 우리는 우리가 만든 도구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연출하고 소비하는지 지켜보는 관객이 되어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류한백 위스콘신대 교수, 수학과 데이터과학기초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