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만 빨랐어도 100명은 살았다”
이태원참사 청문회서 드러난 구조 실패
신고에도 현장 대응·지휘체계 작동 안해
“구조가 10분만 빨랐어도 100명은 살았을 것입니다.”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참사 당시 구조와 대응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증언이 잇따라 나왔다.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특조위 청문회에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윤희근 전 경찰청장,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증인 42명과 참고인 5명이 출석해 참사 당일 예방과 대응 과정에 대해 신문을 받았다.
청문회에서는 특히 구조 지휘체계와 현장 대응 실패가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재난의료지원팀(DMAT)으로 현장 구조에 참여했던 최한조 강동경희대병원 교수는 “현장에 도착했을 때 임시 응급의료소도 보지 못했고 현장 응급의료 지휘도 없었다”며 “산소통 등 구급 장비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그는 당시 상황을 “총체적 난국이었다”고 표현했다.
생존자 민성호씨도 증언대에 올라 사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민씨는 “헬기를 동원해서라도 구조가 빨리 이뤄졌어야 했다”며 “구조가 10분만 빨랐어도 100명은 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대응 부실 문제도 청문회에서 도마에 올랐다. 참사 당일 오후 6시부터 사고 직전까지 이태원 일대 인파 위험을 알리는 112 신고가 11건 접수됐지만 현장 대응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이태원파출소 관계자는 인력 부족을 이유로 들며 “대규모 혼잡 경비는 사전 인력 배치가 필요한데 서울경찰청 상황실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서울경찰청 112 상황실 관계자는 “현장에서 상황 보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책임을 현장에 돌렸다.
정부 대응 체계도 도마에 올랐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참사 직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설치가 늦었다는 지적에 대해 “중대본은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획일적으로 설치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참사 발생 이후 중대본은 정부가 사고를 인지한 지 약 3시간 30분 뒤인 다음날 새벽에야 설치됐다.
용산구청 대응도 논란이 됐다. 참사 당일 구청 당직자는 인파 사고 우려 민원을 접수하고 직원 출동을 검토했지만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부 비판 전단지 제거 문제를 먼저 처리하도록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박 구청장은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 경찰 요청을 받고 상황을 확인해 보라고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경찰 책임 논란도 이어졌다.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은 청문회에서 증인 선서를 거부하고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 특조위는 이에 대해 고발 조치를 의결했다.
청문회는 13일 이틀째 일정을 이어간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참사 이후 기관별 대응 체계와 수습 과정의 문제를 중심으로 신문이 진행될 예정이다. 윤희근 전 경찰청장과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 남화영 전 소방청장 직무대리,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이 증인으로 출석한다.
특조위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도 증인 출석을 요구했지만 윤 전 대통령측은 재판 대응을 이유로 불출석 의사를 밝혔다. 특조위는 이틀간의 청문회를 통해 참사 당시 대응 체계와 책임 소재를 규명한다는 방침이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