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M 수수료 면제’ 노린 반복인출 “사기”
업소 설치 기기 활용 소액 반복 인출 … 벌금형
대법 “컴퓨터 입력도 사람 착오 유발, 기망행위”
ATM(현금자동화기기) 수수료 수익을 노리고 반복적으로 현금을 인출해 은행이 수수료를 지급하게 했다면 사기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마용주 대법관)는 최근 업무방해·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박 모씨 등 3명에게 벌금 400만~6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안마시술소나 마사지업소를 운영하던 박씨 등은 2018년 5~6월 수수료 이익을 위해 업소에 ATM을 설치하고 카카오뱅크 체크카드로 8000~1만여회 현금을 인출, 카카오뱅크가 800만~1000만원 상당의 수수료를 지급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당시 카카오뱅크의 ATM 이용 수수료 면제를 활용하는 수법을 썼다.
ATM을 통해 예금 인출이나 계좌 이체를 하려면 금융거래정보를 전달하는 이른바 밴(VAN·Value Added Network) 서비스가 필요하다. 거래 발생 시 은행이 밴사에 지급하는 수수료는 일반적으로 고객이 부담하는데, 당시 카카오뱅크는 신규 고객 유치를 위해 체크카드 발급 고객에게 수수료를 면제해준다며 밴사인 A사에 카카오뱅크가 직접 수수료를 지급했다. 현금 출금 수수료는 1회당 1020원, 계좌이체는 1회당 850원이었다.
이에 박씨 등은 업소 내 ATM 활용 거래 시 A사로부터 수수료 400원을 지급받는 내용의 계약을 맺고 하루에 적게는 50여회, 많게는 600여회가량 1만원을 반복적으로 인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카카오뱅크 수수료 정산 업무 담당자는 약정에 따라 A사에 수수료를 지급했고, 박씨 등은 그중 일부를 정산받았다.
쟁점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 않은 피고인들의 행위를 사기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였다.
1심 재판부는 업무방해 혐의를 인정해 박씨 등에게 벌금 400만~600만원을 선고했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공소장을 고쳐 박씨 등이 카카오뱅크측을 속여 정산금을 지급하게 했다는 사기 혐의를 추가 적용했다. 2심은 1심과 같은 형을 선고했다.
A씨 등은 자신들에게 사기죄가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ATM 기기에 부정한 명령을 입력하거나 시스템 오류를 이용하는 식의 행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카카오뱅크측을 기망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사기죄가 성립되려면 ‘기망 행위’가 인정돼야 한다. 법리상 기망 행위는 사람으로 하여금 착오를 일으키게 하는 것을 뜻한다. 사람의 개입 없이 컴퓨터가 자동적으로 처리한 업무라면 ‘기망’이 아니므로,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법적 허점을 파고든 것이다.
2심 재판부는 이를 배척했고 대법원의 판단도 같았다.
대법원은 “비록 컴퓨터 등 정보처리장치에 정보를 입력하는 등의 행위가 재산적 처분행위를 하는 사람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런 행위로 인해 정보처리의 결과를 통해 재산적 처분행위를 하는 사람을 착오에 빠뜨렸다면 사람에 대한 기망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이런 법리에 따라 박씨 등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각각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판결에 잘못이 없다고 보고 상고를 기각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