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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전문가 시대에서 산업의 시대로

2026-03-20 13:00:01 게재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 AI 전공자들의 전유물인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학부를 마치고 회사 생활을 하던 필자는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대학원에서 AI를 공부했다. 그때는 AI 전공이 컴퓨터과학(공학)의 세부 전공들 가운데 하나였고 전공자들의 수도 그리 많지 않았다. 대학원에서 AI를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대학들의 수 또한 전국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얼마 되지 않는 시절이었다.

AI를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각종 해석학, 측도론, 변분법에 기반한 최적화 이론, 확률론적 미적분학, 선형대수학 등 어찌 보면 통계물리학을 공부하기 위한 선수과목들과 비슷한 이들 내용을 술술 꿰고 있어야 하는데, 컴퓨터 과학(공학)의 학부과정에서는 이런 내용을 공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AI 전공에 필수인 이런 과목들을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학과는 당시 수학과와 물리학과 밖에 없었는데 이는 시점과 지리적으로 보아도 지금도 전세계적으로 그렇다.

그러던 차에 2012년 ‘제프리 힌튼’ 연구실에서 ‘알렉스넷’이 발표되면서 세상이 바뀌어 버렸다. 70% 수준의 인식률 벽에 막혀서 수십년을 보내던 컴퓨터 비전이 드디어 이 벽을 뚫어 버렸고, 이후 수년 내에는 AI가 인간의 영상 인식률까지 넘어 버렸다. 1940년대에 시작되었던 AI 연구의 여러 문제들 가운데 드디어 한 문제가 진짜로 풀려 버린 것이다.

이후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AI 열풍은 지속되고 있으며 이제는 거대언어모델(LLM)이 ‘튜링 테스트’마저도 통과해 버린 세상이 되었다.

범람하는 가짜 전문가들

그런데 이에 대한 부작용인지 몰라도 2015년 무렵부터 전세계적으로 언론에는 정체불명의 AI 전문가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일명 전문가인 것처럼 말하는 이 사람들 가운데 AI 전공자라면 필수적으로 공부했어야만 하는 스튜어트 러셀과 피터 노빅의 저서 ‘인공지능’과 사이먼 헤이킨의 저서 ‘신경망과 학습기계(Neural Networks and Learning Machines)’를 제대로 공부한 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솔직히 AI의 기초가 되는 수학 물리학 지식을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학생들은 보유한 대학들의 숫자도 한자리 수 초반에 불과할텐데 하는 생각에서 일단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카이스트(KAIST), 포스텍에 신설된 AI 전공들의 커리큘럼을 살펴보았다.

서울대는 각자의 전공에 AI 지식을 약간 더해주는 방식을 채택했는데, 학부생이 자신들 전공 특히 수학과나 물리학과 학부생이 자신들의 전공을 제대로 공부하면서 서울대가 제공하는 AI 커리큘럼을 잘 따라가면 장차 대학원 단계를 거치면 훌륭한 AI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코스였다.

연세대는 학부 수준에서는 가장 탄탄하게 균형 잡힌 AI 전공 코스를 가지고 있는데 물론 학부과정만으로는 결코 AI 전문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학원 진학시 잠재력을 폭발시킬 수 있도록 설계된 괜찮은 코스였다. 고려대도 연세대와 유사하게 균형잡힌 좋은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었다.

KAIST는 가장 거대하고 야심찬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는데아예 단과대학 수준에서 이를 운영하면서 이론 특화 코스, 하드웨어 특화 코스, 문화 및 사회와 연관된 코스 등으로 세부 전공을 나누어 놓았다. 아직은 초창기라 어수선해 보이기는 하는데 장차 웅대한 미래를 바라보고 포석을 둔 느낌이었다. 포스텍은 현재 커리큘럼과 학부의 방향을 전환하고 있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다른 대학들과 다른 자신들의 길을 모색하는 듯하다.

AI전문가와 AI산업 리더의 분화

현재 전세계 AI 를 이끌고 있는 캠브리지와 UCL(University College London)에서 공부한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데이빗 실버’, 딥마인드를 거쳐서 오픈AI의 창업에 참여했다가 지금은 독립한 제프리 힌튼의 제자 ‘일리야 수츠케버’, 오픈AI에 있다가 반기를 들고 나와서 엔트로픽을 창업한 프린스턴 물리학 박사 ‘다리오 아모데이’는 확실히 세계 최고의 AI 전문가이자 AI 연구자들이다.

그런데 AI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오픈AI 공동 창업자 ‘샘 알트만’(스탠포드 학부 컴퓨터과학 중퇴), 테슬라-스페이스X-X(트위터)-그록AI의 ‘일론 머스크’(펜실베니아 학부 물리학/경제학 졸업), 메타(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하버드 학부 컴퓨터과학/심리학 중퇴), 오픈AI의 CTO였다가 독립한 ‘미라 무라티’(다트머스 학부 기계공학 졸업)’ 등은 사실상 AI 이론 자체를 깊이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미치는 AI 업계의 영향력은 그 누구보다 더 크며 사실상 AI 업계의 최종의사결정권자들이라 할 만하다.

AI 연구의 핵심은 진짜 AI 전문가들이 이끌고 있는데 반해 AI와 관련된 업계의 최종의사결정에 관여하는 사람들에는 허사비스나 아모데이, 수츠케버와 같은 AI 전문가들도 있고, 알트만 머스크 주커버그 무라티와 같이 AI 전문가는 아니지만 AI 전문가들을 이끌면서 거대 조직을 관리하고 성과를 낼 수 있는 뛰어난 리더들도 존재한다.

이는 AI가 연구실을 떠나서 진짜로 본격적으로 산업화되고 있는 반증으로 볼 수 있다. 어떤 산업분야든지 해당 분야가 연구실을 떠나서 산업화되는 초창기에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조직을 이끌지만 로켓 점핑과 같은 본격적 산업화 시기에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뛰어난 리더들이 등장하는 게 지난 역사의 패턴이었는데 이 모습이 AI 분야에도 재현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 드디어 진짜 산업화를 증명할 수 있는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등장한 것 같다. 지난 수십년 동안의 발전을 뛰어 넘는 발전을 이룩한 AI 업계에서 지난 일년 동안 최고의 스타라고 말할 수 있는, 드디어 AI 에이전트 시대의 한 단계 도약을 이끌어낸 ‘오픈 클로’를 만들어낸 ‘피터 슈타인버거’와 같은 유형의 인재가 나타난 것이다.

슈타인버거는 비엔나 공과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PDF와 PS 파일을 다루는 소프트웨어를 만든 뛰어난 개발자이지만 AI 전문가는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타인버거는 오픈AI, 구글 제미나이, 앤트로픽 클로드 등이 제공하는 AI 기능에 기반해 동작하는 매우 훌륭한 AI 에이전트를 만들어 냈다.

기술을 넘어 산업 전쟁으로

이제 AI의 산업화가 확실히 그 다음 장으로 이전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 관점에서 국내 대학의 학부 과정에 신설되고 있는 AI 전공에 대한 필자의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의구심을 가졌지만 이들 과정을 통해서 향후 대학원을 통한 AI 전문 연구자가 나올 수도 있고, 학부만 마치고 난 AI 경영자나 뛰어난 조직 리더, 그리고 슈타인버거와 같이 기존 AI 기술을 활용해서 또 다른 혁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뛰어난 응용 프로그램 개발자도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가 커졌다.

AI 버블이 강력하게 의심되는 현 시점에서 기존 인터넷 버블과 확연히 다른 한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인터넷 버블 당시의 수많은 회사들은 실제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현재의 AI 업체는 그 개수도 알고 보면 몇개 되지 않고, 만약 이들 회사들이 현재의 막대한 차기 모델 개발비를 줄이면 즉 현재 모델로 운영에만 집중하면 충분히 자생할 만큼의 수익도 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들 기업들이 현재 막대한 차기 모델 개발비를 지불하고 있는 이유는 순위 경쟁 때문이다.

IT 산업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1등은 80%, 2등은 18%, 3등은 2% 정도의 시장을 가져가는 게 일반 패턴이었기 때문에 오픈AI, 구글, 앤트로픽이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일 정도의 차기 모델 개발비를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이해성 내일e비즈 C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