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신문고 민원도 수사심의신청”
법원, 경찰 ‘접수 거부’ 위법 판단
국민신문고를 통해 제기된 민원이라도 내용상 수사심의신청의 요건을 갖췄다면 경찰은 이를 접수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단순 안내 형식으로 접수를 거부한 행위 역시 행정소송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한다고 봤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재정합의7부(이주영 수석부장판사)는 지난 1월 22일 원고 정 모씨가 서울관악경찰서장을 상대로 제기한 부작위위법확인 소송에서 “경찰이 수사심의신청 접수를 거부한 것은 위법하다”며 이를 취소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사건은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서 시작됐다. 원고는 자신이 고소한 사건이 불송치되자 국민신문고를 통해 서울경찰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이 민원에는 수사 결과에 대한 재검토 요구와 함께 담당 수사관들에 대한 감찰 및 징계 요청이 담겨 있었다. 민원 내용에는 불송치 결정이 사실오인과 법리오해에 해당한다는 주장, 수사가 미진했다는 지적 등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해당 민원에 대해 “징계 대상은 아니다”라고 답하면서, 수사심의신청은 별도 부서에 문의하라는 취지의 안내만 했을 뿐 신청 자체를 접수하지 않았다.
재판의 핵심은 이 민원이 단순 민원인지, 아니면 법적으로 보호되는 ‘수사심의신청’에 해당하는지였다.
재판부는 형식이 아닌 내용에 주목했다. 민원에 사건 정보와 신청 취지, 이유가 구체적으로 기재돼 있고 수사 결과의 적정성과 적법성을 다투는 내용이 포함돼 있는 점 등을 들어 “실질적으로 수사심의신청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또 감찰·징계 요구가 함께 포함돼 있더라도 수사심의신청의 성격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며, 하나의 민원 안에 여러 성격이 함께 존재할 수 있다고 봤다.
경찰은 해당 회신이 단순한 민원 답변일 뿐 처분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국민에게 신청권이 인정되는 사안에서 행정청이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 이는 국민의 법적 지위에 영향을 미치는 공권력 행사에 해당한다고 봤다. 특히 신청 자체를 접수하지 않은 행위는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이라고 판단했다.
국민신문고를 통한 신청의 효력에 대해서도 법원은 분명한 기준을 제시했다. 전자민원창구를 통해 접수된 민원은 법적으로 해당 기관에 직접 신청한 것과 동일하게 취급되며, 다른 기관을 거쳐 이송된 경우에도 내용에 따라 정식 신청으로 접수할 수 있다고 봤다. 결국 재판부는 경찰이 수사심의신청을 접수하지 않은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수사심의 규정에 따르면 신청이 있는 경우 경찰은 이를 접수해야 하며, 내용이 불명확하다면 보완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처리해야 한다”며 “그럼에도 경찰이 접수 자체를 하지 않은 채 문의 안내만 한 것은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