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력발전 사고 3명 사망, 정비 중 참변
설비 교체 과정서 반복 사고 … 재생에너지 확대 속 안전 공백 드러나
경북 영덕 풍력발전단지에서 정비 작업 중이던 노동자 3명이 화재로 숨졌다. 고공에서 발생한 화재와 밀폐 구조가 겹치면서 탈출과 진화가 모두 어려웠던 것으로 나타났다. 노후 설비 교체와 정비 작업이 겹치는 구간에서 사고가 반복되면서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 이면의 안전 관리 공백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북경찰청 중대재해수사팀은 24일 현장 상황과 작업 과정 전반을 확인하며 시공·정비업체 등 관계자의 과실 여부를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정식 수사 단계는 아니지만 원인과 책임을 가리기 위한 사전 확인 절차가 진행 중이다.
경찰은 특정 개인이나 업체를 지목하기보다 당시 작업에 참여한 업체 전반을 대상으로 안전 수칙 준수 여부와 관리 책임 구조를 확인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 초기부터 업무상 과실치사 적용을 염두에 두고 있다”며 “원인이 밝혀지면 수사 여부와 방향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공·정비·운영 주체가 나뉜 구조에서 안전 책임이 분산돼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확한 원인은 발전기 철거 이후에야 확인될 전망이다. 경찰은 설비 이상 여부와 작업 과정의 안전 관리 문제를 중심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숨진 작업자 부검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진행되며 결과는 일주일가량 걸릴 전망이다.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적용 여부는 고용노동부가 별도로 검토 중이다.
사고는 23일 오후 1시 11분쯤 영덕군 창포리 풍력발전단지에서 발생했다. 작업자 3명은 발전기 내부에서 날개(블레이드) 균열을 점검·수리하던 중이었다. 작업은 발전기 상단에서 이뤄졌으며 외부 접근이 어려운 구조였다.
불은 약 78~80m 높이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날개 3개가 연결된 부위에서 불이 번졌고 날개 2개가 떨어졌다. 작업자들은 탈출하지 못했다. 일부는 추락했고 일부는 내부에서 발견됐다. 고공 작업과 화재가 동시에 발생하면서 대응이 늦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화재 진압도 쉽지 않았다. 불이 난 곳이 지상 80m 높이 고공인 데다 발전기 내부에 남아 있는 기름이 진화를 어렵게 했다. 소방당국은 24일 이른 아침부터 잔불 정리에 집중하고 있으며 현재는 불이 번지지 않은 상태에서 연기가 일부 올라오고 있다. 헬기를 동원한 진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전날 밤에는 고가 사다리차를 투입했지만 강한 바람으로 물이 정확히 닿지 않아 진화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 관계자는 “현재는 통제 가능한 수준이며 잔불을 정리 중”이라고 밝혔다.
풍력발전기 내부는 엘리베이터 없이 계단으로만 이동하는 구조다. 화재 발생 시 신속한 탈출이 어렵고 고공 작업 특성상 추락 위험도 크다. 밀폐된 공간에서 연기가 빠르게 차오르면서 초기 대응이 늦어질 경우 생존 가능성이 급격히 낮아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고가 잇따르자 지자체도 대응에 나섰다. 영덕군은 단지 내 풍력발전기 전면 철거를 정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김광열 영덕군수는 “설비가 노후화된 데다 사고가 반복되고 있어 더 이상 유지가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설계 수명이 지났다고 해서 반드시 철거나 교체를 해야 하는 규정은 없어 향후 조치 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최근 풍력발전기 사고는 전국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23일 정비 작업 중 화재로 3명이 숨진 단지에서는 한 달 전 기둥 붕괴 사고가 발생했다. 경남 양산에서도 화재가 발생했으며 지난해에는 강원 평창과 경북 영천에서도 사고가 이어졌다. 노후 설비와 유지보수 작업이 겹치면서 사고가 반복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사고 원인으로는 전기적 문제가 거론된다. 발전기 내부 점검 과정에서 외부 전선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누전이나 합선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만 정확한 원인은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 고공 구조 특성상 초기 화재 원인 규명이 쉽지 않은 점도 변수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를 노후 설비와 정비 작업 위험이 결합된 구조적 재해로 보고 있다. 설비 교체가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유사 사고가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유지보수와 해체 단계에 맞는 별도 안전 기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은 설비 설치 중심으로 추진돼 왔다. 반면 운영 이후 단계의 안전 관리 체계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설비 수명 종료 이후 관리와 작업 안전을 포함한 전주기 안전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에 맞춰 안전 기준도 함께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