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이 곧 공익”… 공직사회 ‘위험한 동일시’

2026-03-25 10:51:48 게재

비윤리 행동, 조직정체성 통해 확산

MZ세대 공무원 공익동기 약화 신호

공공 조직에서 ‘조직의 이익이 곧 공익’이라는 인식이 규범 위반을 정당화하는 경로로 작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공익을 위한 행동이라는 인식이 오히려 비윤리적 행위를 정당화하는 구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25일 한국행정연구원 국정데이터조사센터 데이터브리프에 따르면 공공 조직 구성원들은 ‘조직에 도움이 된다면 사실을 왜곡할 수 있다’는 항목에서 세대별로 19.0%~29.6% 수준의 동의율을 보였다. ‘성과를 과장할 수 있다’는 항목 역시 유사한 수준으로 나타났으며 ‘부정적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응답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이는 조직 이익을 이유로 규범 완화를 수용하는 인식이 공공부문 내부에도 일정 수준 존재함을 보여준다.

◆‘조직 동일시=비윤리 행동’ 경로 = 이 같은 경향은 단순한 개인 일탈이 아니라 조직 구조 속에서 강화되는 특징을 보였다. 보고서는 이를 ‘비윤리적 친조직행동(UPB)’으로 정의했다. 조직 목표 달성을 위해 사실 왜곡, 정보 은폐, 규정 우회 등을 정당화하는 행동이다.

현장에서는 유사한 상황이 쉽게 발견된다. 정책 성과 평가 과정에서 불리한 수치를 축소하거나 사업 추진 과정에서 절차를 생략하는 행위가 ‘조직 보호’나 ‘성과 달성’이라는 명분으로 용인되는 경우다. 재난 대응이나 민원 처리에서도 ‘혼선을 막기 위한 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정보 전달이 선택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분석 결과 공공부문에서는 개인의 공익적 동기보다 ‘조직 동일시’가 비윤리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핵심 경로로 작용했다. 공익을 추구하려는 동기가 직접 행동으로 이어지기보다 ‘우리 조직이 곧 공익 실현 주체’라는 인식으로 전환된 뒤 규범 위반을 정당화하는 구조다.

민간부문이 동기에서 행동으로 이어지는 ‘직접 경로’가 강한 반면 공공부문은 조직 정체성을 거치는 ‘간접 경로’가 중심이라는 점이 확인됐다.

◆MZ세대, 공익동기↓ 비윤리 인식↑ = 세대별 차이도 뚜렷했다. 공공부문에서는 젊은 세대일수록 비윤리적 친조직행동에 대한 수용 수준이 높았다. 예를 들어 ‘사실 왜곡 가능’ 인식은 베이비붐 세대 대비 MZ세대에서 약 10%p 안팎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반면 공공봉사동기는 기성세대보다 낮았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봉사가 중요하다’는 항목에서 공공부문 평균은 높게 유지됐지만,세대별로 보면 젊은 층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이는 공직사회를 지탱해 온 ‘공익 중심 가치’가 세대 간 균열을 보이고 있음을 시사한다.

조직 환경 요인도 영향을 미쳤다. 공공부문은 민간보다 ‘레드테이프(과도한 절차)’를 더 심각하게 인식하는 경향을 보였고, 젊은 세대일수록 윤리적 리더십에 대한 신뢰가 낮았다. 이는 규정 준수보다는 규정 우회를 ‘불가피한 선택’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환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 분석이다.

◆개인 문제 아닌 구조 문제 = 보고서는 공직사회 문제를 개인 일탈이 아닌 구조적 문제로 봤다. 공익적 동기 강화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조직 정체성과 제도 설계를 함께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조직 중심 가치와 공익을 동일시하는 인식이 규범 위반을 정당화하는 핵심 요인”이라며 “공익과 조직 이익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또 “특히 성과 중심 문화 속에서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기준을 확립하지 않을 경우 비윤리적 친조직행동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며 “절차적 정당성을 중심으로 리더십 기준을 재정립하고, 규정 준수가 조직 정체성으로 작동하도록 조직 환경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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