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소원 ‘4심제 우려’ 사라지나

2026-03-25 13:00:47 게재

헌재, 첫 사전심사서 26건 모두 각하

“청구사유 충족 못해” 17건으로 최다

재판 불복 사건, 대부분 각하 가능성

지난 12일 재판소원 제도가 시행된 뒤 청구된 재판소원 사건 중 지정재판부가 첫 사전심사한 사건 26건 모두 각하됐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한 사건을 심리하지 않고 종료하는 결정이다. 헌법재판관 9명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재판부의 본안 심판에 넘긴 사건은 한 건도 없었다.

사실상 ‘4심제’라며 사법부 안팎에서 우려를 제기했지만 재판 불복 사건이 실제로 본안 심판에 회부되는 사건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25일 헌재에 따르면 헌법재판관 3인으로 구성된 지정재판부는 24일 평의를 열고 23일까지 접수된 153건 중 26건의 재판소원 사건을 사전심사해 모두 각하 결정을 내렸다.

각하 사유로는 헌재법에서 명시한 ‘명백한 기본권 침해가 발생한 경우’ 등 청구 사유를 충족하지 못한 것이 17건으로 가장 많았다. ‘판결 확정 30일 이내’로 규정된 청구 기간을 넘긴 5건, 다른 법률에 따른 구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재판소원을 내 보충성 요건을 지키지 않은 2건, 기타 부적법 3건 등이었다. 이 중에서 1건은 중복 사유(보충성·청구사유)로 각하됐다.

헌재는 이날 ‘재판 결과가 억울하다’는 것만으로는 재판소원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헌재는 “법원의 사실 인정이나 법률 적용을 문제 삼거나, 단순히 재판 결과에 불복하는 경우에는 헌법상 권리가 명백하게 침해됐다는 점이 소명되지 않은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날 각하된 사건 중에는 유죄가 확정된 피고인이 “현행범 체포 과정에서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를 법원이 유죄의 근거로 삼아 신체의 자유·평등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한 사건도 있었다. 헌재는 이에 대해 “법원이 증거를 잘못 봤다는 주장에 불과하다”며 “재판으로 헌법상 기본권이 명백하게 침해됐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헌재는 또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고 하급심(1·2심)에서 확정된 판결을 취소해달라는 청구에 대해 “법원 내에서 절차를 모두 거치지 않았다”며 각하했다. 여기에는 제도 시행 첫날 접수된 ‘2호 사건’도 포함됐다. 이는 납북귀환어부 유족이 법원의 형사보상 결정이 지연됐다며 국가배상을 청구했다가 패소한 판결을 취소해달라며 낸 재판소원이다.

헌재는 유족이 2심 패소 후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고 재판소원을 냈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족측은 “소액사건이어서 상고가 사실상 제한돼 포기했다”고 주장했지만, 헌재는 “소액사건이라도 2심이 헌법을 위반한 경우 상고가 허용되기 때문에 그 절차를 밟지 않은 채 재판소원을 낸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1호 사건’으로 접수된 시리아 난민 강제퇴거명령 취소 사건은 지정재판부가 심리 중이어서 그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앞서 재판소원 제도 도입이 논의될 때만 해도 대법원과 헌재 안팎에선 “사실상 4심제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헌재가 첫 사전심사에서 심사 대상 26건에 대해 모두 각하하면서 실제로 본안 심판에 회부되는 사건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헌재는 재판소원 제도 시행 전만 해도 25~30%의 상고율을 고려해 연간 1만건 이상의 재판소원 사건 접수를 예상했다. 하지만 시행 이후 23일까지 153건이 접수된 걸 고려하면 연간 5000~7000건가량이 접수될 것으로 보인다.

첫 심사 기준에 비춰볼 때 앞으로도 단순히 재판 결과에 불복하는 사건은 대부분 각하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헌재측 설명이다.

한편 재판소원은 법원의 확정 판결에 대한 기본권 침해 문제를 다투는 헌법소원심판이다. 다른 헌법소원심판 사건과 마찬가지로, 사건이 접수되면 재판관 9명 중 3명으로 구성되는 지정재판부 3곳 중 1곳에 배당돼 청구가 적법한지 여부를 살피는 사전심사를 받는다.

헌법소원심판 사건의 사전심사 요건은 헌재법에 명시돼 있다. 다른 법률에 따른 구제절차를 모두 거쳤는지 여부(보충성 요건) 등이 대표적이다. 재판소원은 여기에 더해 확정 판결일로부터 30일이 지나기 전 청구해야 한다는 기간의 제한 조건이 달려 있다.

기본권 침해 요건을 충족했는지 여부도 따져본다. 법원의 재판이 △헌재 결정에 반하는 취지로 재판해 기본권을 침해했는지 △헌법과 법률에서 정한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아 기본권을 침해했는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 기본권 침해가 명백한지 등이 요건이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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