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미 상장 '기업가치 재평가 기대'

2026-03-26 13:00:21 게재

“현금 100조원 확보”… 증권가 목표주가 상향

기존 주주가치 훼손하는 '신주 발행 형식 반대'

SK하이닉스가 미국 증시에 주식예탁증서(ADR) 상장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중장기적으로 순현금 100조원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이에 국내 증권가에서는 고질적인 한국 증시 저평가의 해소 기회가 될 수 있다며 기업가치 재평가를 기대했다. 다만 SK하이닉스의 ADR 발행에는 찬성하지만 기존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신주 발행 형식은 반대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근본적인 거버넌스 개선이 전제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연내 상장 목표 = 2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전일 SK하이닉스는 미국 ADR 상장을 위한 공모 등록신청서(Form F-1)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비공개로 제출했다고 공시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중 상장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으나, 공모 규모와 방식, 일정 등 세부 사항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최종 상장 여부 역시 SEC의 심사 결과와 시장 상황, 수요예측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할 방침이다. SK하이닉스는 향후 구체적인 사항이 확정되는 시점 또는 6개월 이내에 재공시하겠다고 밝혔다.

ADR은 직접 상장이 아니라 국내 기발행 주식을 활용한 간접상장 방식이다. 외국 기업이 미국 증시에서 자사 주식을 거래할 수 있도록 발행하는 증권으로, 통상 글로벌 투자자 접근성을 확대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이날 경기도 이천 본사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ADR은 세계 최대 주식시장이자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상장한 미국 시장에서 기업가치를 재평가받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며 “중장기적으로 순현금 100조원 이상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지난해 말 기준 순현금은 12조6944억원 수준이다. 현금성 자산까지 포함하면 35조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현재 삼성전자의 순현금 규모가 약 92조원인 점을 감안해 이와 비슷한 재무 여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로 분석된다.

◆한국 상장 주식에 대한 재평가 자극 = 국내 증권가에서는 SK하이닉스의 미국 증시 상장이 기업가치 재평가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ADR 발행시 미국의 대표적인 메모리반도체 상장사 마이크론과 유사한 수준의 밸류에이션을 적용받을 수 있다는 기대도 나왔다.

ADR 기준가는 국내 시장에 상장된 본주에 환율과 ADR 교환 비율(본주 1주당 ADR 몇 주를 발행할 지)을 고려해 결정될 예정이다. 김영건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외국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새로 수요예측을 하는 만큼, 현시점의 사업 전망을 적시적으로 반영한 가치평가가 이뤄져 새로운 밸류에이션 기준점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며 “ADR과 국내 본주 사이의 밸류에이션 격차가 발생할 경우 본주의 밸류에이션을 자극할 수 있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메모리반도체 상장사인 마이크론의 올해 추정 PER은 7.8배, 샌디스크는 17.6배인 반면 SK하이닉스는 5.9배에 불과하다. 실제 ADR 발행 소식이 전해지면서 전일 국내 증시에서 SK하이닉스는 장중 주가가 5% 이상 상승했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도 “SK하이닉스는 경쟁사인 마이크론에 비해 수익성이나 기술력, 고객대응력 등 모든 면에서 우수함에도 밸류에이션은 저평가를 받고 있다”며 “이를 탈피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ADR을 통한 주주환원이 가장 적합하다”고 분석했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SK하이닉스의 미국 ADR 상장이 글로벌 패시브 자금 유입을 촉진하면서 국내 본주 가치 재평가를 이끄는 핵심 촉매로 작용할 것”이라며 “글로벌 투자자들의 접근성을 크게 높이는 이벤트”라고 평가했다.

◆기존 주주 지분 가치 희석…역유입 리스크 = 다만 향후 수년간 안정적인 현금흐름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현재 유력하게 예상되는 신주 발행 방식은 기존 주주의 주식 가치를 희석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식 수가 늘어나는 만큼 기존 주주들의 주당 가치는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서는 최대 주주인 SK스퀘어가 지분율 20% 이상을 유지해야 하는 구조를 감안하면 신규 발행 규모가 제한될 가능성이 높고, 실제 발행 주식 수가 크지 않아 지분 희석 영향도 제한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문제는 지분 희석 규모 자체보다 자사주 소각 직후, 신주 발행 타이밍이다. 이는 기존 주주들의 신뢰 훼손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거버넌스포럼은 “2026~2028년 동안 189조원의 설비 투자와 수십조원의 연구·개발(R&D) 투자를 집행한 이후에도 약 672조원의 잉여현금흐름이 창출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런 상황에서 10조~15조원 규모의 ADR 상장을 통한 신규 자금이 왜 필요한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포럼은 “잉여현금흐름이 넘치는데 기존 주주 입장에서 지분이 희석되는 신주 발행 방식은 반대한다”며 “ADR 상장에 앞서 근본적인 거버넌스 개선이 전제돼야 주식 재평가 작업도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남우 포럼 회장은 “이사의 주주충실의무에 따라 이사들은 신주 발행 같은 중대한 결정을 할때 보유 현금, 잉여현금흐름, 차입 등 여러 가능한 대안을 충분히 검토하고 그 중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 가장 극대화 된다고 합리적으로 기대되는 방안을 선택해야 한다”며 “최종 결정 후 절차적 정당성 측면에서 다양한 선택지에 대한 장단점 및 최종 결정 이유를 투명하게 공시해야 한다.

‘역유입 위험’도 있다. 미국에서 거래되는 ADR 가격이 국내 본주보다 낮아질 경우, 차익 실현을 노린 투자자들이 ADR을 원주로 전환해 국내 시장에 매물을 쏟아낼 수 있다는 지적이다. ADR은 일종의 교환권으로 미국 투자자가 ADR을 반납하면 예탁기관은 한국 원주를 즉시 내 줘야 한다. 현재 KB금융(-3%), 신한지주(-5.4%) 포스코홀딩스(-2.8%)는 현재 미국 ADR가격은 한국 원주보다 낮은 디스카운트 상태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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