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ESG 공시 로드맵, 글로벌 기준에 너무 뒤처져”
기후금융·스튜어드십 코드·녹색 대전환 정책과 배치
정치권·기후시민단체, 공시도입 시기·대상 수정 요구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ESG 의무 공시 로드맵 초안’이 글로벌 흐름과 속도에 뒤처지고 기후금융, 전환금융 밸류업, 스튜어드십 코드, K-GX(대한민국 녹색대전환) 등 현 정부가 추진하는 여러 정책과도 배치된다는 지적이 잇따라 나왔다. 정치권과 기후시민단체들은 ESG 의무 공시 도입 시기와 대상 등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위 안, 지나치게 더디고 협소” = 기후행동의원모임 비상과 국회 ESG 포럼,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녹색전환연구소, 플랜1.5, 빅웨이브 등 6개 단체는 26일 국회 소통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ESG 공시 로드맵 초안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기후행동의원모임 비상 대표를 맡고 있는 이소영 의원(더불어민주당)과 국회 ESG 포럼 공동대표 민병덕 의원(더불어민주당)이 함께 참여했다. 참여단체들은 금융위원회가 지난달 발표한 ESG 공시 로드맵 안에 대해 “제조업 비중이 높은 수출기업이라는 특수성에 기반해 기업의 ‘단기적 부담’만을 충실히 반영한 설계된 안”이라며 “공시 시기와 공시 대상, 공시 채널, 스코프 3 공시 등 모든 면에서 글로벌 흐름에 한참 뒤처진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금융위는 2028년(회계연도 2027)에 연결자산총액 3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대상으로 거래소 공시로 일정 기간 시행한 후 법정 공시인 사업보고서 공시로 전환하고, 기타 간접 온실가스 배출량인 스코프3(Scope3)은 3년 유예한 2031년(FY30)에 의무화한다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2029년에는 공시 대상 기업이 자산 1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로 확대될 예정이다. 추가적인 공시 대상 기업 확대 일정은 공개되지 않았다. 금융당국은 추후 국제적인 흐름과 기업의 준비 상황 등을 지켜보며 추가 확대 문제를 논의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참여단체들은 금융위 초안이 “ESG와 관련한 다른 정책들의 발목을 잡는 ‘정책적 모순’을 갖고 있다”며 “정부가 역점을 두고 주친하고 있는 기후금융 활성화, 전환금융을 통한 기업 및 산업 전환 촉진, 밸류업 및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과 실효성 강화를 통한 기업가치 제고는 물론 대한민국 녹색 대전환(K-GX)을 통한 녹색문명국가라는 큰 그림과도 명백히 배치되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30조원 기업, 금융 제외하면 29곳 = 이들 단체는 먼저 공시시기와 공시대상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연결자산총액 30조원에 해당하는 코스피 상장 기업 수는 58개밖에 되지 않으며, 그나마도 금융기관이 29개를 차지한다. 탈탄소 전환을 촉진해야 할 다수의 기업과 산업을 포괄하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 유럽연합(EU), 영국, 캐나다, 일본, 중국, 호주 등은 우리나라보다 공시시기가 빠르며, 최초 공시대상도 월등히 많다. 일본은 공시 첫해인 2027년에 약 172개 기업이 공시를 하고 2028년에는 약 343개로 증가한다. 중국은 공시 의무화 첫해인 올해 약 458개 기업이 공시 대상이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총장은 “문제는 거의 모든 나라들이 2030년까지는 계획했던 공시가 완료되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빨라도 2033년(2032년 회계연도)에야 코스피 상장사 전체로 확대된다는 점”이라며 “ESG 정보의 공백 상태에서는 국제적인 ESG 투자 자금은 공시가 투명한 나라의 기업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5조원 이상…스코프 3, 1년 유예 제안 = 이들은 대안으로 공시 의무화 시행 첫 해 공시 대상을 연결자산총액 5조원(약 156개사) 이상 기업으로 하고 스코프 3 배출량 유예기간도 면책을 전제로 1년 유예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5조원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하는 ‘공시대상 기업집단’의 기준선이고 한국 경제의 실질적인 대형 우량주에 해당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들 단체는 현재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 현황(67%),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 응답(62.3%),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와 목표관리제 포함(174개) 등을 고려하면 연결자산총액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약 223개)부터 의무공시를 시작하는 것이 좋겠지만 수용성을 감안해 일단 5조원 이상부터 시작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스코프 3 배출량 유예기간은 면책 책임을 전제로 한 1년 유예를 제안했다. 금융위는 측정·산정 등의 어려움을 들어 3년 유예한 3031년(FY3030)부터 의무공시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하지만 ISSB는 1년 유예를 제시했고, EU는 유예기간이 없다. 캐나다 3년을 제외한 영국, 호주, 일본은 1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180일~1년이다. 중국은 자율 공시 유도부터 시작해 3030년에는 모든 의무 공시 대상 기업에 확대된다.
국내 기업들의 스코프 3 공시역량도 부족하지 않다는 근거도 있다. 스코프 3을 CDP에 보고하는 우리 기업은 2023년 127개, 2024년 158개, 2025년에는 222개사로 급증했고, 이들 기업은 스코프 3의 15개 카테고리 중 평균 8개 항목을 이미 산정해 보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수연 플랜1.5 정책활동가는 “스코프 3의 3년 유예는 국제기준과의 정합성을 유지하겠다는 취지와 부합하지 않는다”며 “기업의 기후영향, 기업의 기후에 의한 재무적 리스크 등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어, 글로벌 투자자로 하여금 한국 기업의 ESG 공시 정보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신호만 줄 위험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글로벌 국가들처럼 1년 유예하되, 추정지 기반 데이터의 오류에 대해서는 산정의 합리성 확보 노력을 전제로 세이프 하버를 적용하는 방안을 대안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거래소 공시 1년만 시행 후 법정 공시 전환 제안 = 참여단체들은 거래소 공시 후 법정공시로의 전환한다는 금융위의 공시 채널 방안에 대해서도 비판하며 거래소 공시는 1년만 시행하고 이후 법정공시로 전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거래소 공시는 한국거래소와 상장회사 간 계약관계에 근거한, 구조적으로 ‘약한 공시’로, 우선 정보의 신뢰성이 법정 공시보다 떨어진다. 거래소 공시는 법정공시가 가지고 있는 징역 또는 벌금이라는 형사적 처벌이 없을뿐더러, 행정적 처벌, 시장상의 제재, 민사상 책임 등 모든 면에서 느슨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ESG 워싱 가능성도 높다. 때문에 글로벌 투자자들은 처음부터 법정 공시를 요구하고 있고, EU, 영국, 캐나다, 호주, 일본 등 대부분의 나라들은 법정공시를 채택하고 있다.
정영주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은 “정보의 품질과 신뢰성 제고, ESG 워싱 우려, 산업 전반 전환 촉진, 투자자들의 신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도입시부터 법정공시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위가 거래소 공시라는 완충 기간을 도입한다면, 그 기간이 결코 길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공시 대상 별로 완충 기간을 1년 정도로 설정하고 차례로 법정공시로 전환”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올해 상반기에는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법정공시의 기반을 명확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한 지속가능성 공시 정보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제3자 인증도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민 기후변화청년모임 빅웨이브 대표는 “대부분의 주요국은 의무 공시 도입과 동시, 혹은 1년 이후에 제한적 인증 수준에서 의무화를 시작해 합리적 인증을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로드맵을 발표했다”며 “심지어 우리나라의 공급망 경쟁국인 중국은 2026 회계연도, 일본은 2028년 회계연도부터 제한적 인증 의무화를 시작하는데, 우리나라는 자율인데다가 구체적인 일정도 제시되지 않아 국제적인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참여연대 또한 금융위에 ‘ESG 공시제도 로드맵’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참여연대는 “공시 도입 시기와 대상이 글로벌 기준에 비해 지나치게 늦고 협소해 투자자 보호·시장 신뢰 확보가 어렵다”며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ESG 공시 체계로 재설계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최종 로드맵은 △공시 도입 시기 앞당기고 대상 확대, △스코프3 공시의 원칙적 포함, △ESG 전반으로 공시 범위 확대, △국제 기준과의 정합성 유지, △법정 공시 체계 도입, △의무 공시 중심의 지원 체계 마련 방향으로 보완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