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파장과 한국-베트남: ‘해상 공급망 동맹’ 필요

2026-03-27 13:00:08 게재

호르무즈에서 남중국해까지 번진 에너지·물류 충격 … 공급망 위기 대응책 공동 설계로 돌파해야

유가 상승 여파…하노이 공항 승객들 승객들이 2025년 3월 25일 베트남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에서 탑승 수속을 기다리고 있다. 베트남항공은 유가 상승 여파로 4월 1일부터 주당 23편 규모의 일부 노선 운항을 중단할 계획이다. EPA=연합뉴스
2026년 2월 말,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그리고 이에 따른 이란의 보복은 중동지역을 다시 거대한 화약고로 만들었다. 지난 한달 사이, 이번 사태는 이란 상공이나 호르무즈 해협에 국한된 ‘지역적’ 충돌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이번 사태는 다양한 차원에서 복합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이번 분쟁은 원유 및 LNG 수입과 해상 무역에 크게 의존하는 아시아의 제조업 국가들에 소위 ‘전장 너머의 전쟁’을 보여주었다. 중동에서의 군사 행동은 한국과 베트남의 주유소 가격표를 바꾸는 것에서 출발했지만, 현재 화학 산업, 농업, 화물운송, 환율과 물가까지 흔들고 있다.

중동발 충격 확산과 아시아 공급망 위기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좁은 수로다. 이란의 실효적 봉쇄와 걸프 산유국들의 생산 감축이 맞물리자 국제 유가는 순식간에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다. 에너지 분석업체 아거스(Argus)의 추산에 따르면, 걸프 국가들의 원유 생산량은 2025년 2월 대비 하루 최대 690만배럴까지 급감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주요 해상 유전에서 조업을 중단하며 하루 250만배럴의 생산 차질을 빚었고, 이라크와 쿠웨이트도 생산 감축에 들어갔다.

이번 전쟁의 양상은 과거와 다르다. 이란은 비대칭 전력을 기반으로 높은 회복력을 보이며 전쟁을 장기 소모전으로 끌고 가고 있다. 호르무즈의 위기는 ‘에너지’를 넘어 ‘식량 안보’로도 번진 전망이다. 중동은 비료 및 화학 산업 원료의 핵심 공급지다. 충돌 이후 해상 운송이 차질을 빗자 요소 가격은 2월 중순 대비 약 30% 이상 급등하며 2022년 요소 공급망 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비료 수요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물론, 파종기에 접어든 북반구 농업 국가들에도 이는 식량 부족이라는 실존적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 점은 중국과 인도가 서둘러 중재에 관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베트남의 ‘해양국가’ 전환과 우리의 기회

이 거대한 파도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강타한 곳은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연간 170억달러 규모의 연료를 수입한다. 페트롤리멕스(Petrolimax)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이란 공습 후 지난 2주 사이 베트남의 휘발유 34%, 경유 46%, 등유 45%씩 상승했다. 응이손(Nghi Son)과 둥꾸앗(Dung Quat) 정유소가 국내 수요의 약 70%를 공급하는데, 응이손은 정유할 원유의 대부분을 쿠웨이트, UAE 등 중동에 의존하고 있고, 둥꾸앗도 역시 30~3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가 상승 못지않게 무서운 것은 물류 지연과 ‘전쟁 프리미엄’으로 인한 해상보험료의 급등이다. 배송 시간과 비용이 급증하면 제조업 생산비와 소비자물가지수(CPI)는 통제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치솟을 수 있다.

한국 역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은 여전히 걸프 지역에 대한 원유 의존도가 높다보니, 유가 상승으로 물류비와 생산비가 함께 오르고, 이 충격이 다시 금리와 환율, 소비와 투자로 이어지고 있다. 이미 1970년대 오일 쇼크와 2008년 금융위기를 통해 에너지 가격 상승과 금융 불안을 경험한 우리는 작금의 사태에 대해 뼈아픈 기시감을 느낀다.

이번 위기를 통해 한국과 베트남은 단순한 무역과 투자 파트너를 넘어 지정학적 리스크를 함께 관리해야 하는 안보 파트너로 진화해야 하는 할 필요성을 마주하게 됐다. 중동-인도양-말라카 해협-남중국해로 이어지는 ‘해상 공급망’ 위에 양국은 이미 운명공동체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최근 베트남 내부에서 3200km에 달하는 해안선을 가진 자국이 단순히 ‘첨단 기술’ 구호 아래 조립 기지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진정한 ‘해양 강국’으로 도약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활발하다. 호르무즈 해협이 세계 에너지 시스템의 ‘노른자’라면,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남중국해는 세계 무역의 ‘허리’에 비유할 수 있다. 21세기 권력의 중심이 대서양에서 인도-태평양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이 해역을 통제하는 국가가 미래 질서의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이른바 ‘말라카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일대일로를 통한 대체 항로와 항만 네트워크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인도 역시 인도양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하며 해군력을 증강하고 있다. 베트남은 인도-태평양 전략 틀 하에서 터키나 싱가포르처럼 지리적 이점을 기반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추 국가(Hinge Country)’로의 부상을 모색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한국과 베트남의 이해관계는 자연스럽게 만난다. 세계적인 조선·해운 역량과 스마트 항만 운영 기술을 보유한 한국은 베트남의 해양 전략을 실현할 최적의 파트너다. 베트남의 주요 항만을 스마트 물류 허브로 육성하고, 조선 및 해양 에너지 개발을 공동으로 추진하는 것은 양국의 안보와 경제 성장을 동시에 담보하는 카드가 될 수 있다.

위기 극복 위한 한-베 4대 공동 프로젝트

중동발 폭풍을 넘어서기 위해 양국은 추상적 구호를 넘어 구체적인 ‘그림’을 함께 그려야 한다. 첫째, ‘스마트 해상 네트워크 및 위기관리 시스템’의 구축이다. 하이퐁, 꽝응아이, 깜라인 등 베트남의 거점 항만을 한국의 스마트 물류 기술로 고도화하고, 호르무즈나 말라카 해협에 위기가 발생했을 때 양국 선사가 선복(화물적재 공간)을 공유하고 비상 항로를 함께 개척 및 활용하는 ‘해상 물류 안전 메커니즘’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둘째, 에너지 안보를 위한 ‘인프라 파트너십’ 강화다. 화석 연료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원전, LNG, 수소,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이제 생존의 문제다. 우리는 기술과 금융 파트너가 되어, 베트남을 아세안의 청정에너지 및 원전 개발 기지로 삼고 공동으로 에너지 인프라를 개발할 수 있다.

특히 아세안 전력망(ASEAN Power Grid)과 트랜스아세안 가스 파이프라인(Trans-ASEAN Gas Pipeline) 사업에 한국의 정책 경험과 자본을 접목한다면, 외부 충격에 덜 흔들리는 역내 에너지 자립 기반의 구축에 기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진출기업에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셋째, 해상 보험 및 금융 리스크 분산 메커니즘 구축이다. 분쟁 발생 시 급등하는 보험료와 유류 할증료는 기업의 생존을 위협한다. 우리나라는 농업 및 재해보험 분야에서 조 단위 규모의 국가재보험 및 재보험기금을 운용하며 자연재해 위험을 민간 보험사와 분담하고 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과 아세안 각국 정부 및 역내 금융기관이 ‘한-아세안 해상 위기 기금’을 조성하여 분쟁이나 위기 시 해상보험 비용의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넷째, ‘인도-태평양 해양 안보 대화’의 정기적인 개최이다. 지정학적 위험은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증폭된다. ‘한-베트남 해양 대화’를 확대해 인도와 UAE를 포함한 ‘인도-태평양 해양 안보 대화체’를 신설하고, 중동과 남중국해 정세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위기 시 국민 보호 및 물류 차질 대응을 위한 공동 훈련과 정보를 주기적으로 교환할 가치가 있다. 이는 사이버 공격과 허위 정보에 대한 대비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안전망 구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최근 개최된 아세안 외교·경제장관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중동 분쟁에 대한 우려를 표하며 에너지 시장 불안과 주요 해상 항로·공급망 교란이 역내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지적했다. 이들은 아세안 석유 안보 협정(ASEAN Petroleum Security Agreement) 활용과 에너지원 다변화 및 공급망 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베트남은 이 논의의 중심에서 ‘연대와 자립’을 키워드로 제시했다. 한국은 이 과정을 ‘남의 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아세안의 에너지와 물류망에 대한 ‘핵심 설계자’로 참여해야 한다.

호르무즈와 말라카를 거쳐 남중국해로 들어오는 에너지는 한국과 아세안 공동의 생명선이다. 우리가 아세안의 에너지 안보에 기술과 자본을 보태는 것은 곧 한국의 에너지 요충지를 지키는 일이다. 이는 한국에는 ‘위험 분산’이며, 베트남을 포함한 아세안에는 ‘성장 가속화’를 의미한다.

미래를 향해 함께 할 동반자

지난 30여년의 한국-베트남 협력 성과를 돌아보면, 양국은 이제 각자도생의 단계를 넘어 함께 한 배에서 항로를 결정하고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 관계가 되었다.

에너지와 바다, 그리고 공급망을 둘러싼 지정학적 경쟁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이다. 이 격동의 시기에 자립도가 낮은 국가는 충격에 쉽게 흔들리겠지만, 진정한 동반자와 함께 항로를 개척하는 국가는 새로운 기회를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베트남을 단순한 생산 기지로 보는 낡은 시각에서 벗어나, 인도-태평양에서 평화와 번영을 함께 실어 나를 ‘동반자’로 인식해야할 시점이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시작된 위기를 한국-베트남 협력의 새로운 전환점으로 승화하자. 이번 위기는 한국-베트남 협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곽성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2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