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장 리포트
AI 시대 노동시장 격변에 대한 캘리포니아의 선제적 대응
캘리포니아 주지사 개빈 뉴섬은 지난달 21일 인공지능(AI) 확산으로 인한 대규모 일자리 대체 가능성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노동 정책 전반의 개편을 검토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이번 조치는 AI 기술 확산에 따른 고용구조 변화와 일자리 감소에 대비하고 주 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대응 체계를 마련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행정명령에 따라 캘리포니아 주정부 기관들은 학계, 노동단체, AI 업계와 협력해 직원을 대체하는 대신 직원을 유지하는 기업을 지원할 수 있는 정책 방안을 연구하게 된다.
또한 이번 명령은 고객 서비스 담당자, 소프트웨어 개발자, 마케팅 및 영업 인력 등 AI의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화이트칼라 직군을 대상으로 직업 재교육 및 기술훈련 프로그램을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뉴섬 주지사는 모든 주민이 기업 주식 채권 국부펀드 등 생산적 자산에 대한 지분을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보편적 기본자본 제도의 도입 가능성에 대한 검토도 지시했다.
AI 충격에 노동정책 다시짜는 캘리포니아
메타는 AI 전략 재편의 일환으로 전체 인력의 약 10%에 해당하는 8000여 명을 감원했다. 인텔 시스코 아마존 등 수천명의 직원을 해고한 다른 주요 기술기업들과 마찬가지로 메타 경영진은 AI 도입이 상당한 수준의 생산성 및 효율성 향상을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앤트로픽은 자사의 AI 챗봇 클로드를 활용해 경영 비즈니스 예술 미디어 등 다양한 전문직 분야에 미칠 인공지능의 영향을 분석한 연구를 발표했다. 해당 분석은 AI가 광범위한 화이트칼라 직종의 업무 구조를 변화시키거나 일부 직무를 대체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며, 향후 노동시장 변화에 대한 논의를 촉진하고 있다. 또한 앤트로픽 공동 창립자 다리오 아모데이는 향후 5년 내 화이트칼라 일자리의 최대 절반이 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AI업계 주요 인사들은 인공지능 혁명이 경제와 노동시장에 상당한 충격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하며, 이에 대비하기 위한 새로운 사회·경제적 안전망 구축의 필요성을 잇달아 제기하고 나섰다. 이들은 AI로 인한 대규모 일자리 감소와 소득불평등 심화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해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보다 광범위한 경제적 지원 정책이 필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CEO는 보편적 기본소득을 포함한 공공 지원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결국 현재의 경제 시스템은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될 수 있다”며 “경제를 어떻게 조직해야 하는지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샘 알트만 오픈AI CEO 역시 과거 보편적 기본소득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바 있다. 이후 그는 AI가 창출하는 부와 가치의 일부를 일반 대중이 집단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 구조의 필요성을 제안하며 논의를 확장했다. 오픈AI는 올해 4월 발표한 정책제안서에서도 AI 혁명에 따른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사는 현재의 전환기를 산업혁명과 그에 뒤이은 뉴딜정책에 비유하며 초지능 시대에는 보다 적극적인 산업정책이 필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론 머스크 역시 AI로 인한 대규모 일자리 감소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X 게시물을 통해 “연방정부가 지급하는 수표 형태의 보편적 고소득 제도가 AI로 인한 실업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머스크는 ‘보편적 고소득’의 구체적인 지급 규모나 소득수준에 대해서는 명확한 수치를 제시하지 않았다.
한편 테슬라는 인간 노동을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는 대규모 휴머노이드 로봇 생산을 추진하고 있으며, 머스크는 장기적으로 수십억대 규모의 로봇이 경제 활동에 투입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또한 스페이스X를 비롯한 AI 및 우주 산업 기업들은 AI 연산 수요를 뒷받침하기 위해 데이터센터를 우주에 진출시키려는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머스크는 보편적 고소득 제도를 단순한 경기부양책이나 임시 지원책이 아니라 AI가 창출할 엄청난 풍요의 시대에 대비한 장기적인 사회 시스템으로 설명해왔다. 이는 오랫동안 복지 확대와 정부 개입에 비판적이었던 일부 실리콘밸리 인사들의 놀라운 반전이다.
실제로 그는 연방정부 지출 삭감을 강하게 주장해 왔으며 정부효율부 활동과 관련해 한때 연방 예산에서 2조달러 규모의 지출 감축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 시대에 대비한 그의 구상은 기존의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사회보장제도를 넘어서는 대규모 사회안전망 확충을 시사하고 있다.
AI업계 리더들이 기본소득 주창하는 이유
이 같은 주장들은 AI 산업을 주도하는 기업들이 기술발전으로 발생하는 경제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부의 재분배를 요구하는 실리콘밸리 리더들의 파격적 제안이다. 일부 비평가들은 이를 사실상 사회주의적 정책을 옹호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반면 지지자들은 AI가 초래할 수 있는 대규모 구조적 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현실적 논의라고 평가하고 있다.
보편적 기본소득(UBI) 도입을 둘러싼 논의에서 재정적 실현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의 공공정책 및 경제학 교수이자 전 미국 노동부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제시 로스틴은 막대한 부유층에 대한 대규모 과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론 머스크가 이러한 논의를 제기한 점에 대해 “반가운 놀라움”이라고 평가했다.
로스틴은 과거 공동연구를 통해서도 전국 단위의 소득보장 정책이 상당한 재정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미국 모든 성인에게 연간 1만2000달러를 지급할 경우 사회보장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등 주요 복지지출과 맞먹거나 이를 초과할 수 있으며, 이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연방 세수를 거의 두 배로 확대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는 추정도 제시됐다.
반면 보편적 기본소득 옹호자인 스콧 산텐스는 일부 기술 기업 지도자들의 UBI 논의가 전략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 논의는 일종의 마케팅전략으로 볼 수 있다”며 “대규모 일자리 감소라는 사회적 우려를 완화하면서도, 기술 발전에 대한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경제학자들은 재분배 정책 외에도 직업 재교육과 같은 보다 표적화된 대응책을 대체로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카고 연방준비은행이 올해 봄 발표한 워킹페이퍼에 따르면 경제학자들은 경제적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광범위한 현금 이전보다 노동시장 적응을 돕는 맞춤형 정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와 관련해 4월 말 메타는 데이터센터 등 AI 관련 프로젝트에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수천명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무료·신속 교육 프로그램을 포함한 다년간의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이는 AI 전환기에 대비해 기존 노동자를 재교육하는 방향의 정책 접근으로 해석된다.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안전망 균형찾기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은 노동시장 전반의 구조적 변화를 예고하며 각국 정부, 산업계,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다양한 대응 방안을 둘러싼 논쟁을 촉발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뉴섬의 행정명령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노동정책 개편과 사회안전망 구축을 모색한 사례로 평가된다.
동시에 업계에서는 보편적 기본소득, 직업 재교육 등 다양한 해법이 제시되고 있으나, 그 실현 가능성과 효과를 둘러싼 견해 차이는 여전히 크다. 결국 향후 정책 방향은 AI로 인한 생산성 향상과 일자리 대체 가능성 사이에서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안전망의 균형을 어떻게 설정할지에 달려 있다.
CA 변호사·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