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자주국방과 공군력
이재명 대통령은 전작권 회복(전환)을 강조했다. 전작권 회복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에 전투기, 정찰 및 감시 자산과 같은 공군력 증강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공군력 증강이 아니고 약화를 우려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F-5와 같은 기존 전투기가 대거 도태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군 예산 부족으로 KF-21 전투기 사업의 지연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왜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지 그 이유를 역사적 사례를 통해 고찰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발효된 1954년 이후 한국정부는 한미동맹 강화와 자주국방 사이를 왕래했다. 1971년의 미 7사단 철수, 1987년의 미국의 작전통제권 전환 요구와 주한미군 감축 노력, 2002년의 미국의 전작권 전환 요구를 기점으로 박정희 노태우 노무현 대통령은 자주국방을 추구했다.
자주국방 차원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은 공군력 증강에 박차를 가했다. 1970년대 당시 박 대통령은 15비, 16비, 17비 및 18비라는 4개 전투비행단을 추가 창설했으며, F-86과 F-5A 중심의 200대 미만의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던 한국공군을 F-16, F-4, F-5E와 같은 400여 대 규모의 첨단 전투기를 보유한 공군으로 탈바꿈시켰다.
아태지역에서의 미군의 점진적인 철수와 작전통제권 전환 노력에 반응해 노태우 대통령은 120대의 F-16 전투기와 더불어 42대의 F-4 전투기를 도입했으며 19비와 20비 등 2개 전투비행단을 창설했다. 육군 방공포사령부를 공군으로 전군시켰다.
박정희 노태우정부와 방향 달랐던 노무현정부
2002년 말경 미국의 전작권 전환 요구에 노무현정부는 자주국방을 표방했다. 미국은 전작권 전환 일환으로 전투기, 감시 및 정찰 자산과 같은 공군력 증강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 같은 미국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정부는 육군과 해군 중심의 전력 건설을 추구했다.
자주국방 차원에서 박정희 노태우 대통령이 공군력 증강에 매진했던 반면 노무현 대통령이 공군력이 아니고 육군과 해군 전력 증강을 위해 노력한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주요 이유는 군 출신의 박정희 노태우 대통령이 자주국방의 의미를 비교적 정확히 알고 있었던 반면 민간인 출신의 노무현 대통령이 그 의미를 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이 한국의 자주국방을 요구한 1970년대와 1980년대 당시 대부분 한국인은 조만간 한반도에서 미군이 대거 철수할 것으로 생각했다. 6.25전쟁의 참상을 직접 경험했던 당시의 한국인들은 심각한 안보불안을 느꼈다. 결과적으로 육군 대장 출신의 박정희, 노태우 대통령이 자주국방 차원에서 공군력 증강에 박차를 가한 것이다.
예를 들면 육군 일각에서 육군 방공포사령부의 공군 전군 시점을 지연시킬 기미를 보이자 노태우 대통령이 강하게 역정을 낸 바 있다. 이처럼 당시 공군력 증강은 대통령 차원의 관심 사항이었다.
노무현정부 당시 미국이 전작권 전환을 요구했던 이유는 주한미군의 장기 주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의 전작권 전환 요구가 주한미군 철수 목적이 아님을 감지한 한국의 기득권 세력들은 전작권 전환에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했다. 그 방안으로 전작권 전환의 필수 요소인 공군력 증강 저지를 위해 적극 노력한 것이다. 군의 문제에 관해 비교적 전문성이 떨어졌던 민간인 출신 노무현이 대통령이란 사실을 기득권 세력이 교묘히 이용한 것이다.
공군력 저하 노리는 기득권 저항 있나?
전작권 회복을 통한 이재명정부의 자주국방 노력은 박정희 노태우 노무현정부와 차이가 있어 보인다. 역대 정부 자주국방 노력이 미국이 한국정부에 강요한 성격이었다면 이재명정부의 자주국방 노력은 자체적으로 추동한 성격이란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이 같은 측면에서 보면 이재명정부의 자주국방 노력은 이전의 경우와 비교해 한 차원 높은 성격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런데도 자주국방의 주요 요소인 공군력 증강이 아닌 저하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이것이 민간인 출신 이재명이 대통령이란 사실을 교묘히 이용한 기득권 세력의 저항 때문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