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포상 7만건 전수조사 착수
국가폭력 연루자 훈장 유지 논란
이근안·박처원 등 취소도 검토
이 대통령 “공소시효 배제 추진”
경찰이 창설 이후 처음으로 경찰관에게 수여된 포상·표창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군사정권 시절 고문과 간첩 조작 등 국가폭력에 가담한 인물들이 여전히 훈·포장을 유지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 데 따른 조치다.
29일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은 이달 초부터 1945년 창설 이후 경찰관에게 수여된 정부 포상과 대통령·국무총리 표창 등 약 7만여건의 공적 사유를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 조사 대상에는 군사정권 시기 강압수사와 고문 등 공권력 남용 사례가 포함된다.
경찰은 공적이 허위로 드러나거나 형사처벌이 확정된 경우 서훈과 표창을 취소할 수 있다는 상훈법과 정부표창 규정을 근거로 취소 여부를 판단할 방침이다. 대상자를 선별한 뒤 국무총리실 보고와 심의 절차를 거쳐 행정안전부에 취소를 요청하는 방식이다.
이번 조사의 중심에는 이른바 ‘고문기술자’로 불린 이근안 전 경감이 있다. 1970~80년대 치안본부 대공수사관으로 활동한 이씨는 민주화운동 인사들에 대한 고문 수사로 유죄가 확정된 인물이지만, 생전 받은 10여개의 상훈 가운데 공식적으로 박탈이 확인된 것은 1986년 수훈한 옥조근정훈장 하나뿐이다. 나머지 표창과 포상은 수십년째 유지돼 왔다.
남영동 대공분실 책임자였던 박처원 전 치안본부 대공수사처장 역시 취소 대상 후보로 거론된다. 박씨는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수사 축소·은폐 책임자로 지목된 인물로, 다수의 훈·포장과 표창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고문·조작 사건으로 처벌받은 인물들이 형사처벌 이후에도 국가로부터 받은 ‘명예’를 유지하고 있는 구조는 그간 제도적 공백으로 지적돼 왔다. 실제 행정안전부는 2018년 이후 간첩 조작 등에 가담한 공무원 70여명의 서훈을 취소했지만, 상당수는 여전히 포상 기록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법·제도 개선 이후에도 실질적인 정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2017년 정부표창 규정이 개정되면서 대통령·국무총리뿐 아니라 기관장 표창까지 취소가 가능해졌지만, 과거 포상에 대한 일괄 재검토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전수조사를 계기로 국가가 부여한 훈·포장의 기준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문과 사건 조작 같은 국가폭력 행위가 ‘공로’로 인정돼 온 과거의 평가 체계를 바로잡지 않으면 서훈 제도의 정당성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사법살인과 같은 국가폭력 범죄자에게 수여된 훈·포장 박탈은 만시지탄이지만 당연한 조치”라며 “국가폭력 범죄의 공소시효와 민사 소멸시효를 배제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조사가 모든 포상을 포괄하지 못할 수 있다는 한계도 제기된다. 경찰이 정부 포상과 대통령·국무총리 표창을 중심으로 조사 범위를 설정하면서 기관장 표창 등 일부는 제외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사가 경찰 내부 정리에 그치지 않고 검찰·군 등 다른 국가기관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가폭력의 책임이 특정 조직에 국한되지 않았던 만큼, 서훈 정비 역시 전 부처 차원의 과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은 조사 대상이 방대한 만큼 일정 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취소 사유가 있음에도 유지된 사례를 중심으로 정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며 “가능한 한 신속하게 정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