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강기 공포를 넘은 ‘살리고’의 실험
(주)DDD 무동력 피난기 눈길
심리적 안정·공간 경제성까지
최근 고층 건축물 화재가 잇따르며 대피 골든타임 확보가 중요해진 가운데, 기존 대피 수단인 사다리형 완강기의 한계가 지적되면서 ‘승강식 피난기’가 새로운 안전 패러다임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북 완주 테크노밸리에 입주해 있는 (주)디디디(DDD)는 최근 무동력 피난 시스템 ‘살리고(SALIGO)’를 공개하고 “K-소방의 글로벌 표준을 주도하겠다”고 나서 눈길을 끌었다. 재난안전 혁신기업인 이 회사는 지난 3월 27일 비전선포식에서 고층 건물 피난 기구의 혁신을 강조했다.
승강식 피난기 ‘살리고’ 본격 출시
현재 고층 건물에 널리 쓰이는 비상 탈출 장치는 60cm 남짓한 좁은 창문을 통해 밧줄에 의지해 대피하는 구조다. 노약자나 장애인에게는 줄로 묶인 사다리형 대피 기구가 구조라기보다 ‘공포’ 그 자체라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특히 한 명씩만 이용할 수 있는 구조적 한계로 동시에 대피해야 하는 군중 상황에서는 심각한 병목현상과 2차 피해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한국건축시공학회 회장을 역임한 임남기 동명대(건축공학과) 교수는 “고령자나 어린이, 장애인 등에게 현행 사다리 피난 기구는 심리적 패닉을 동반하는 사실상의 ‘장벽’”이라며 “누구나 직관적이고 안전하게 그리고 평등하게 이동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효율성·경제성 살린 무동력 피난 시스템
(주)디디디가 개발한 승강식 피난기 ‘살리고’는 이런 단점과 한계를 극복하는데 집중했다. 탑승자의 체중만으로 작동하는 혁신적인 무동력 시스템을 자랑한다. 화재 시 전력이 차단된 극한 상황에서도 안전하게 작동하며, 탑승자가 아래층으로 대피한 후 발판에서 내리면 기구가 자동으로 상승해 다음 사람이 즉시 이용할 수 있도록 연속적인 대피를 지원한다. 제품명인 살리고는 출구·출발을 뜻하는 스페인어 ‘살리다’(SALIDA)에서 따 왔다.
부상자가 혼자 힘으로 탈출 가능
이 제품은 KFI(한국소방산업기술원)로부터 150㎏ 하중으로 5000회 작동 테스트를 통과해 내구성을 입증받았다. 또 2023년 행정안전부 ‘재난안전 우수제품 제15호’로 지정되며 기술력을 공인받았다. 여기에 외부 화염이나 연기로부터 탑승자를 보호하는 대피 캐노피 구조를 갖추고 있어 현행 소방청 고시(NFPC 301)에 따른 ‘승강식 피난기’로 분류돼 완강기를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갖췄다. 이날 행사장에서 디디디의 전속모델인 달인 김병만씨가 동료 2명과 함께 무동력 피난기로 탈출하는 장면을 시연하기도 했다.
건축물의 공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경제성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승강식 피난기를 설치한 공간이 단순한 생명 보호를 넘어 건축주에게 실질적인 ‘공간 이익 환원(Space Payback)’이라는 혜택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대피공간 대신 승강식 피난기를 대체 구조로 설치할 경우, 지자체의 건축 조례에 따라 바닥면적 산정에서 제외되거나 최대 4~5%까지 용적률 완화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대피 공간을 실용적인 유효 공간으로 전환할 수 있게 해 시공사와 건축주 모두에게 ‘안전’이 곧 ‘경제적 이익’으로 직결되는 이른바 ‘보너스 면적’을 창출한다는 뜻이다. 서울·부산·대전·전주 등에서 관련 제도를 도입해 승강식 피난기 설치 시 용적률 완화 및 재정 지원 혜택을 부여하고, 경기도도 기존 시스템의 업그레이드를 지원하고 있다.
박인규 (주)디디디 대표는 “단순한 피난 기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사회적 안전 인프라를 설계하고 있다”면서 “‘살리고’의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중동, 동남아, 미국, 유럽 등 글로벌 대피 안전의 표준을 확립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