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열려도 '해상공급망 혼란' 수개월 계속 전망

2026-04-03 13:00:02 게재

해협 안쪽·바깥쪽 몰린 선박들 한꺼번에 몰려 정체 예상

홍해 통한 원유수송은 선원·선박·화물 안전 확보해야 가능

중동전쟁이 막을 내리고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려도 해상공급망이 즉각 정상화되기 어렵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한국해양진흥공사(해진공)는 2일 ‘호르무즈 통항 재개와 시장 정상화의 시차’라는 특별 보고서에서 “통항 재개만으로는 시장 정상화를 단정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며 “유조선들이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같은 항만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 해운시장은 봉쇄국면과는 구조적으로 다른 도전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해협 안쪽 원유 가득실은 유조선 늘어 = 2월 28일 시작한 중동전쟁은 해운시장에 전례없는 충격을 가하고 있다. 보고서는 1973년 오일쇼크, 1980~1988년 이란·이라크전쟁, 1990~1991년 걸프전과 달리 이번 전쟁은 △호르무즈 해협의 실질적 봉쇄 △전쟁위험보험시장 기능 마비 △페르시아만 내부(호르무즈 해협 안쪽 = 서쪽) 화물을 가득 채운 유조선 증가 등의 세 가지 충격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해진공은 선박위치정보를 제공하는 케이플러(Kpler)를 통해 2일 기준 중형(MR)급 이상 유조선 220여척,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63척이 호르무즈 해협 내부에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가디언은 선박들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보험료와 두려움 때문이라고 전했다.

지난달 20일 런던 로이즈 보험시장에서 활동하는 보험 중개업체 맥길 앤 파트너스의 해상 부문 책임자 데이비드 스미스는 해협 통항 선박에 대한 전쟁보험료가 선박가치의 3.5%에서 7.5%까지 올랐다고 전했다. 전쟁 이전 0.125~0.25% 수준에서 10배 이상 60배까지 폭등한 것이다.

정대훈 해진공 해운정보팀 과장은 “전쟁위험보험은 위험이 현저히 증가할 때 보험을 해지하는 조항이 있다”며 “중동전쟁 이후 보험사들이 이를 발동했고 보험료 재협상 때 신규 추가보험료가 대폭 인상돼 신규 보험인수 비용이 선박운항을 금지할 정도 수준이 된 상태”라고 말했다.

Kpler의 선박추적데이터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기준 페르시아만 안쪽에 있는 초대형 원유운반선이 원유를 가득 채운 만재 비율은 전쟁 전 평균 48.8%에서 94.7%로 급등했다.

해협 봉쇄 기간 동안 원유 선적은 계속하면서 나갈 곳이 막힌 선박들이 늘어난 것이다. 원유탱커를 가득 채운 선박들은 해협이 열렸을 때 해협을 빠져나오려 하고, 만재선박이 늘어나면 한꺼번에 빠져나오려는 선박들이 몰리는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해협 바깥쪽(동쪽 오만만)에도 초대형 원유운반선들이 집결하고 있다. 오만만에서 화물(원유)을 싣지 않은 VLCC 공선 비율은 전쟁 발발 이후 급등해 지난달 18일 기준 86.0%로 정점을 기록했다. 전쟁 전 평균 67.9%에서 18%p 상승했다.

해진공은 △해협 안쪽으로 입항할 수 없어 대기 중인 선박 △해협 통항 재개를 예상하고 페르시아만 방향으로 이동 중인 선박 등이 몰려 오만만에 공선이 급증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해협 바깥에 대기중인 선박들은 해협이 열릴 때 다른 선박보다 빨리 해협 안쪽으로 들어가려 좁은 수로로 몰릴 수 있다.

◆봉쇄기간 길어질 수록 통항 재개 후 정상화 오래 걸려 = 보고서는 이런 상황에서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린다고 해도 해운시장이 정상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것으로 진단했다.

2021년 에버기븐호가 6일간 수에즈운하에 좌초한 사태는 운하 통항이 재개된 후에도 3~4주의 시장 혼란으로 이어졌다. 차단 기간보다 3~5배 길었는데, 이 비율을 호르무즈 해협에 적용하면 30일 봉쇄는 90~150일의 정상화 기간을 요구한다.

하지만 호르무즈 해협은 수에즈운하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게 해진공 분석이다. 수에즈운하의 경우 통로 양쪽에 선박이 대기하다 운하통항 재개 후 한 차례 통과하면 적체가 해소되지만 호르무즈는 구조가 다르다는 게 이유다.

전쟁 전 12개월간(2025년 3월~2026년 2월) 선박 추적데이터에 따르면 페르시아만 원유 수출은 글로벌 시장에 분산돼 있지 않고 3분의 2가 중국 인도 대만 한국으로 향한다. 해협 통항이 재개되면 목적지 항만으로 도착시점을 분산시켜줄 중간 관문 없이 해협 안쪽에 고립돼 있던 선박이 대부분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출발하게 되고, 비슷한 시간대에 동북아시아 터미널에 도달하게 된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봉쇄기간이 늘어나는 것도 해협이 열린 후 정상화까지 시간을 추가할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페르시아만의 주요 원유 적재지(선적항)에서 동북아 하역항까지 왕복(하역, 재적재 포함) 기간은 보통 38~45일이다. 전쟁이 빨리 끝나 해협 폐쇄기간이 선박의 왕복항차 사이클보다 짧으면 전쟁 전에 출발한 선박들이 동북아 항만에 하역한 후 다시 페르시아만으로 돌아와도 선박 정체가 누적되지 않고 다시 화물을 선적할 수 있다. 시장이 사실상 1회통과로 정상화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고 해협 봉쇄기간이 45일을 넘어가면 상황은 질적으로 바뀐다. 전쟁 전에 1차 출발한 선박들이 하역을 마치고 페르시아만으로 복귀하면서 해협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해협 동쪽 오만만에 집결하기 시작한다. 해협이 열리면 오만만 동쪽에 모여있던 선박들은 먼저 진입하기 위해 해협으로 몰리고, 이들 선박이 화물을 적재한 후 다시 동북아 목적항으로 몰리고, 하역 후 다시 페르시아만으로 집결하는 정체 충격파가 이어질 수 있다.

정 과장은 “이렇게 되면 정상화 기간이 비선형적으로 증가해 정상화까지 얼마나 걸릴지 예측하기 어려워진다”며 “핵심질문은 해협 폐쇄기간이 얼마나 길었으냐가 아니라 목적항에서 하역을 마친 선박들이 호르무즈 동쪽에 집결하기 시작했느냐이고, 그 집결 여부가 주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치적 메시지보다 리스크 보는 선사 = 호르무즈 해협 봉쇄 상황이 길어지면서 홍해를 통한 원유수송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1일 열린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선사들이 원하는 경우 홍해를 통해 원유를 운송해 올 수 있도록 해양수산부와 외교부가 협의하고 결과를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선사들은 신중한 분위기다. 27년 경력의 해운업계 관계자는 “선사는 정치적 메시지보다 리스크와 손익을 먼저 본다”며 “항로가 물리적으로 열려 있더라도 공격 위험이 남아 있고, 보험료가 높고, 운항 차질 가능성이 크다면 홍해를 선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선사 입장에서는 한 번의 사고가 단순한 운항 지연에 그치지 않고 선박손실 선원안전 화주배상 공급차질 기업신뢰훼손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홍해를 통해 원유를 수송하려면 선사 입장에서는 안전 보험 비용 등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해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얀부항에서 원유를 싣고 후티가 장악하고 있는 홍해 오른쪽의 밥엘만데브해협이 아니라 홍해 왼쪽으로 수에즈운하를 통해 원유를 수송하는 방안은 비상시 활용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물량도 충분치 않고 운송시간과 비용은 급등할 것으로 보인다.해운시장 전문가에 따르면 얀부에서 울산까지 바로 오는 경우(홍해→밥엘만데브해협→인도양→말라카해협→한국)는 약 7056해리로 25.6일(선박운항속도 12.5노트 기준) 걸린다.

하지만 수에즈운하를 돌아서 오는 경우 홍해→지중해→대서양→인도양→말라카해협→한국으로 운항거리는 1만5707해리로 늘어나고, 항해 시간만 52.4일이 걸린다.

얀부에서 수에즈운하를 지나면서 이집트의 아인수크나, 시디케리르에서 원유를 옮겨싣는 과정을 거치는데 수에즈운하 통과 1일, 아인수크나 하역 1.5일, 시디케리르 재선적 1.5일을 더하면 총 소요기간은 56.4일로 늘어난다. 하역과 선적 대기시간 등을 반영하면 전체적으로 60일이 넘을 수도 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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