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우회 나선 중동…석유수출 지형 바뀐다

2026-04-03 13:00:02 게재

봉쇄 위험에 육상 수송로 확대

파이프라인 투자 다시 부상

중동 주요 산유국들이 호르무즈 해협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새로운 파이프라인 건설을 본격 검토하면서, 글로벌 석유 수출 구조가 재편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중동 전쟁으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제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걸프 국가들이 이를 우회할 수 있는 육상 수송망 구축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고 2일(현지시간)보도했다.

현재 중동 원유 수출의 상당 부분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하지만 이번 충돌을 계기로 해당 해협이 언제든 봉쇄될 수 있는 ‘병목 지점’이라는 인식이 강화됐다. 이에 따라 각국 정부와 에너지 기업들은 해협을 거치지 않는 대체 경로 확보에 나선 것이다. 이미 사우디아라비아는 홍해로 연결되는 약 1200km 길이의 동서 파이프라인을 통해 하루 약 700만배럴을 수송하고 있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해협 봉쇄 우려 속에 건설된 이 시설은 현재 핵심 수출 통로로 재조명되고 있다.

아민 나세르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 최고경영자는 “이 파이프라인은 지금 우리가 활용하고 있는 주요 경로”라고 말했다.

사우디는 하루 1020만배럴에 달하는 생산량 중 더 많은 물량을 파이프라인으로 옮기기 위해 기존 노선 확장과 신규 노선 건설을 검토 중이다.

전문가들도 분위기 변화가 감지된다고 평가했다. 메이순 카파피 애틀랜틱카운슬 중동 프로그램 선임 고문은 “가설적 논의에서 실제 실행 단계로 전환되고 있다”며 “모두가 같은 지도를 보고 같은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단일 노선이 아닌 ‘다중 네트워크형 수송망’이 가장 안정적인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국가 간 협력과 비용 문제로 실현 난도는 높다.

실제 신규 파이프라인 건설에는 막대한 비용과 정치적 부담이 따른다. 레바논 건설업체 캣그룹의 크리스토퍼 부시 최고경영자는 사우디 동서 파이프라인을 현재 기준으로 다시 건설할 경우 최소 50억달러가 필요하며, 이라크를 경유하는 다국적 노선은 150억~200억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밝혔다.

보안 문제도 걸림돌이다. 이라크에는 미폭발 탄약과 무장세력 위협이 남아 있고, 오만 항구 역시 최근 드론 공격으로 일시 폐쇄되는 등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다.

정치적 이해관계도 복잡하다. 파이프라인 운영권과 물량 통제권을 둘러싼 갈등 가능성이 크고, 국가 간 협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부시 최고경영자는 “각국이 개별 전략을 포기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단기적으로는 기존 인프라 확장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힌다. 사우디 동서 파이프라인과 아랍에미리트의 푸자이라 연결 노선을 확대하면 신규 건설보다 빠르게 수출 능력을 늘릴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인도-중동-유럽을 잇는 경제 회랑(IMEC) 구상과 결합해, 원유뿐 아니라 다양한 물류가 오가는 새로운 무역 축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동 국가들은 아직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았지만, 호르무즈 해협의 안정성이 불확실한 상황이 지속될 경우 기존 해상 중심의 수출 구조는 점차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

카파피 고문은 “현재 에너지 위기의 규모를 감안하면 기존 방식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전쟁은 단순한 공급 차질을 넘어, 중동 석유 수출 경로 자체를 재편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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