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전략적 불안정 시대’를 읽는 법

2026-04-07 13:00:01 게재

올해 미국이 이란 핵시설을 타격하고 베네수엘라에 군사·경제적 압박을 가했을 때, 세계는 몇 가지 낯선 풍경을 목격했다. 선전포고 없이 시작된 ‘작전’, 인공지능(AI) 표적 지정과 드론 군집이 주도한 타격, 그리고 이란의 대리 네트워크가 중동 전역에서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패트리엇 요격 미사일 재고가 소진돼 우크라이나 방공망까지 흔들리는 예상 밖의 확전 경로가 그것이다.

‘작전’으로 설계된 것이 곧바로 전략적 연쇄를 작동시켰다. 위기가 단계를 밟지 않고 도약하고, 파장이 설계 범위를 벗어나는 이 양상은 지금의 안보 불안정이 무엇인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 현실을 읽는 데 가장 정확한 렌즈는 ‘전략적 안정성’이다. 단순한 평화나 전쟁 부재가 아니라 선제공격과 군비증강의 유인이 구조적으로 약화된 상태를 가리키는 이 개념은 위기 안정성과 군비경쟁 안정성이라는 두 기둥 위에 선다.

지금 세계는 두 기둥이 동시에 흔들리는 시대다. 그 동인은 기술이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탐지와 요격의 시간을 붕괴시키고, AI 표적인식은 결정을 밀리초로 압축한다. 핵·재래식 이중용도 플랫폼은 날아오는 미사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만들고, 사이버 공격은 핵 지휘통제체계를 재래식 수단으로 마비시킨다. ‘사용하지 않으면 잃는다’는 심리적 압박이 구조화되는 세계다.

미국은 전략적 안정성 포기, 북은 전용

2025년 미국 국가안보전략(NSS)은 이 불안정을 관리하기보다 심화시키는 역설을 안고 있다. 위기 안정성 차원에서 ‘골든 돔’ 미사일 방어 강화는 상대에게 더 많은 공격 무기를 만들 유인을 제공한다. 러시아는 극초음속·변칙기동 미사일로, 중국은 핵탄두 증강으로, 북한은 다탄두 ICBM에 더 집착할 것이다.

군비경쟁 안정성 차원에서 NSS의 ‘경쟁 우위 유지’ 목표는 군비경쟁을 불가피하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핵전력 현대화, 미사일 방어, AI 기반 지휘통제의 결합은 상대의 탄두 증, 플랫폼 다양화를 구조적으로 촉진하고 신전략무기제회담(START) 이후의 군비통제 비전 부재는 이 악순환을 방치한다.

충돌 안정성 차원에서 동맹국의 역할 확대는 국지적 충돌 유인을 높여 한반도·대만해협·남중국해의 충돌 안정성을 오히려 낮춘다.

공존 안정성 차원에서 NSS는 국제질서를 경쟁장으로 규정하며 신뢰구축과 위기관리 협력을 언급하지 않는다. 결과는 평화로운 공존이 아닌 ‘관리된 불안정’이다.

북한의 최근 군사전략은 이 불안정을 능동적으로 전략화한다. 고체연료 극초음속 미사일, 저고도 기동형 단거리 탄도미사일, 군집 드론, 해일 핵어뢰로 구성된 정밀타격망은 한미 미사일 방어를 다층적으로 회피하도록 설계되었다. 북한판 A2/AD 전략은 반위협·반접근·반개입의 세 축으로 한미연합의 초기 대응과 증원을 차단하려 한다. 여기에 핵·재래식 연계(CNI) 전략이 결합되면서 재래식 공격과 핵 사용의 경계가 의도적으로 흐려진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북한이 ‘전략적 안정성’이라는 개념을 자국 논리로 전유하는 방식이다. 첫째, 대미 억제의 안정성이다. 미국의 핵 선제공격을 억제할 직접 억제력을 확보하고, 위기 안정성을 북한 방식으로 구현한다.

둘째, 전략적 지위의 안정성이다. 핵강국이 밀집한 인도·태평양에서 중·러와 함께 다극 체제 내 자신의 전략적 위치를 확보하고, 이것이 군비경쟁 안정성에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셋째, 글로벌 공존 질서의 안정성이다. 핵정책법령에 ‘세계의 전략적 안정 보장’을 명기하고 핵무기를 반미 국제질서 구축의 도구로 위치시키며 다극화 질서 속 평화 공존을 강조한다. 안정성의 언어를 역공의 무기로 쓰는 것이다.

새로운 전략적 스케일과 내러티브 필요

한국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전략적 스케일과 내러티브다. 세계 핵질서-인도태평양-동북아-한반도 전구가 하나의 체계 안에서 교차하는 현실에서 북핵→남북관계→동맹 강화의 선형 논리는 구조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9.19 군사합의 파기 이후 핫라인과 완충지대가 모두 사라진 한반도에서 억제와 위기관리는 분리될 수 없다.

억제를 강화하면서도 위기관리 채널을 살리고, 동북아 군비경쟁을 완화할 다층적 군비통제 협의틀을 주도적으로 제안하는 것이 지금 한국에게 필요한 대전략의 언어다. 전략적 안정성은 핵보유국만의 개념이 아니다. 불안정의 한복판에 놓인 나라일수록 그 언어를 먼저 구사해야 한다.

홍 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