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없는 중국 ‘과기혁신채권’ 조달액 절반, 빚 갚는 데 썼다
지난해 발행액 2조위안
R&D 투입은 17% 불과
87%는 국유기업에 배당
중국 자본시장에서 과학기술 혁신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과기혁신채권’ 발행액이 2025년 약 2조3000억위안(약 504조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대비 87.5% 증가한 수치로, 중국 당국의 정책 드라이브에 따른 결과다. 그러나 급격한 양적 팽창 이면에는 자금 배분의 불균형과 용도의 부적절성 등 구조적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
6일 중국 차이신글로벌에 따르면 중국 과기혁신채권 시장은 지난해 5월 당국이 채권시장 내 ‘과기혁신 전용판’을 신설하고 발행 자격을 금융기관 및 사모펀드(PE)·벤처캐피털(VC)까지 확대한 이후 급성장했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발행량의 약 80%가 5월 정책 발표 이후 시장에 공급됐다.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신질생산력’(첨단과학·첨단산업기술을 활용한 고효율·고품질의 새로운 질적 생산력) 육성 전략에 맞춰 리스크 자본을 공급한다는 명분이 투자자들과 국영 발행사들을 자극한 것이다.
다궁 글로벌 신용평가는 이러한 폭발적 성장은 정부의 혁신 금융 추진, 억눌렸던 수요의 분출, 그리고 산업 업그레이드를 위한 장기 자본의 필요성이라는 세 가지 요인이 맞물린 결과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록적인 발행 수치에도 불구하고 실제 자금은 특정 집단으로 쏠렸다. 중국 시장조사기관 윈드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이후 발행된 과기혁신채권 중 국유기업(SOE) 비중은 발행가치 기준 약 87%에 달했다. 반면 실질적인 기술 혁신 주체인 민간 기업의 비중은 8% 미만에 머물렀다.
신용 등급별로는 AAA급 우량 기업들이 시장을 독점했다. 이는 안정성과 수익성을 중시하는 기존 채권 시장의 신용 평가 모델이 자산 규모가 작고 무형 자산 위주인 민간 기술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전통 산업군인 유틸리티, 에너지, 소재 기업들이 사업 내용을 ‘디지털 전환’으로 재포장해 저금리 자금을 조달하는 이른바 ‘테크워싱’ 사례도 빈번히 나타났다.
자본의 질적 운용 측면에서도 문제점이 드러났다. 지난해 말 기준 조달된 자금의 53.5%가 기존 채무 상환에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핵심 목적인 연구개발(R&D) 및 기술 혁신에 직접 투입된 비중은 17.3%에 불과했다. 과기채가 기술 개발보다 기업의 재무구조 개선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기술 개발 주기와 채권 만기 사이의 ‘미스매치’도 시장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바이오나 반도체 등 하드테크 분야는 성과를 내기까지 보통 5~10년이 소요되지만 지난해 발행된 과기채의 평균 만기는 3.6년에 불과했다. 특히 발행물의 60% 이상이 3년 미만 단기물로 구성돼 있어, 장기적 기술 투자를 지원하기에는 만기 구조가 부적합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재무제표 중심 신용 평가 방식으로는 ‘무형의 기술력’을 제대로 가치 평가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규제 당국은 특허의 질, R&D 효율성 등 ‘비재무적 지표’를 평가 모델에 도입하도록 독려하고 있으나, 정보 공시의 불투명성으로 인해 실제 현장 적용은 미미한 상태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사례처럼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하는 ‘하이일드 채권(정크본드) 시장’ 활성화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유망하지만 위험도가 높은 기업이 높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리스크를 정확히 가격에 반영하는 매커니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리잉 중신건투증권 투자은행위원회 위원은 리스크를 감수하는 대신 높은 잠재 수익을 추구할 수 있는 ‘과기혁신 고수익 전용판’ 신설을 제안하기도 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강력한 부도 처리 법적 프레임워크와 투자 문화의 변화 없이는 ‘암묵적 지급 보증’ 체제에서 ‘시장 기반 리스크 프라이싱’ 체제로의 전환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