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고려아연 ‘상호주 활용’ 적법 판단…공정위 조사결과 촉각
영풍의 ‘의결권 행사 허용 가처분’ 재항고 기각
대법원 “외국 자회사 통한 상호주 형성은 적법”
경영권 분쟁 속 고려아연 ‘합법 방어’ 명분 확보
순환출자금지위반혐의 등 공정위 조사에도 영향
대법원이 고려아연과 영풍의 경영권 분쟁에서 불거진 ‘상호주 의결권 제한’ 조치에 대해 고려아연 측 손을 들어줬다. 영풍이 제기한 가처분 신청이 대법원에서 최종 기각됨에 따라, 고려아연이 자회사를 활용해 영풍의 의결권을 묶어둔 대응은 법적 정당성을 확보하게 됐다.
이번 판결은 현재 진행 중인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와 금융당국의 판단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3년째 경영권 분쟁 이어져 = 8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대법원 제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주식회사 영풍이 고려아연을 상대로 낸 ‘의결권행사허용가처분’ 재항고 사건에서 영풍의 재항고를 기각했다. 이로써 작년 주주총회 당시 고려아연이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했던 조치가 적법했다는 원심 판단이 확정됐다.
이 사건은 고려아연의 호주 자회사인 SMC가 영풍 주식 약 10%를 취득하면서 발생했다. 이를 통해 ‘고려아연→SMC→영풍→고려아연’의 순환출자 구조가 만들어졌다. 상법 제369조 제3항은 “회사, 모회사 및 자회사가 다른 회사 발행주식 총수의 10분의 1(10%)을 초과하는 주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 그 다른 회사가 가지고 있는 회사 또는 모회사의 주식은 의결권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정거래법 23조도 대기업이 순환출자를 형성하는 계열출자를 한 경우, 계열출자대상회사의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상호주를 통해 가공의 의결권을 행사해 주주총회 결의 결과를 왜곡하는 행위를 막기 위한 법적 장치다.
이를 근거로 고려아연은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영풍이 가진 고려아연 주식(약 25%)에 대한 의결권을 제한했다. 그러자 영풍은 “외국 법인은 상법상 자회사가 아니며, 이러한 주식 취득은 경영권 방어만을 목적으로 한 배임이자 공정거래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아울러 영풍은 고려아연측을 순환출자 금지 위반 등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공정위에 신고했다. 현재 공정위 기업집단감시국이 조사 중이며 조만간 결론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
◆판결문의 3대 핵심 쟁점 = 대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영풍 측이 제기한 법리적 쟁점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고려아연의 대응이 ‘합법적 테두리’ 안에 있음을 명확히 했다.
가장 치열했던 쟁점은 호주 법인인 SMH와 그 자회사 SMC를 상법 제369조 제3항의 ‘자회사’로 볼 수 있느냐 였다. 대법원은 “다른 회사의 주식을 가지고 있는 자회사가 외국회사이더라도 주주총회 결의와 지배구조 왜곡을 방지할 필요는 그대로 존재한다”며 “외국 회사가 우리 상법의 주식회사와 유사한 회사라면 자회사에 포함된다”고 판결했다. 즉 국적과 상관없이 실질적인 모자관계가 성립한다면 의결권 제한 규정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또 영풍은 고려아연 경영진이 사익을 위해 회사의 자금을 동원해 주식을 취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경영진이 개인적인 목적으로 자회사를 이용해 배임행위를 했다거나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주식 취득행위 자체가 사업 지속을 위한 전략적 판단일 수 있으며, 이를 단정적으로 ‘위법한 경영권 방어 행위’로 몰아세울 수 없다는 취지다.
상호주 보유 요건을 언제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명확한 가이드를 제시했다.
대법원은 “실제로 의결권이 행사되는 대상회사의 주주총회일에 요건을 충족한다면 의결권이 제한된다”는 기존 법리를 재확인했다. 영풍은 주주명부 폐쇄일(기준일)을 주장했으나, 법원은 실제 의결권 행사가 일어나는 시점의 실질적 지분관계를 우선시했다.
◆공정위·금융당국 조사에 미칠 파장 = 이번 대법원 판결로 영풍과 MBK파트너스 연합이 제기해 온 ‘고려아연 경영진의 위법성’ 주장은 동력을 잃게 됐다. 특히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인 공정위의 판단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영풍은 고려아연의 주식 취득이 순환출자 금지 위반이나 부당 지원에 해당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대법원이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고 명시하면서 향후 공정위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당국이 주시하던 ‘경영진의 배임’ 가능성 역시 사법부의 최종 판단으로 상당 부분 해소됐다. 고려아연 측은 “우리의 노력이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진 정당한 조치임이 입증됐다”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이번 판결을 근거로 영풍·MBK 연합의 공격을 ‘약탈적 M&A’로 규정하고, 자신들의 방어 행위를 ‘준법경영’으로 강조하는 프레임을 공고히 할 것으로 보인다.
◆분쟁의 중심은 ‘지분확보’ 싸움으로 = 법적 공방에서 일단 고려아연이 완승을 거두면서, 이제 두 진영의 대결은 법정이 아닌 ‘시장’에서의 지분확보 싸움으로 옮겨갈 전망이다.
고려아연은 이번 판결로 확보한 법적 정당성을 바탕으로 국내외 주주 및 투자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영풍과 MBK 연합은 법리적 공격 대신 공개매수 가격 조정이나 우군 확보를 통한 표 대결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외국 자회사를 활용한 상호주 전략이 국내 상법 및 공정거래법 체계 내에서 어떻게 해석되는지에 대한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기업들이 경영권 분쟁 시 활용할 수 있는 합법적 방어 수단의 범위를 대법원이 확인해준 셈”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대법원의 이번 기각 결정은 고려아연 경영진에게 강력한 ‘면죄부’와 ‘방패’를 동시에 부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향후 공정위 등 규제당국의 조사 결과에도 가이드라인이 될 전망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