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보상 한계…집단소송제 확대하나

2026-04-08 13:00:01 게재

소급 적용 여부 최대 쟁점 …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에 쿠팡·통신사 ‘촉각’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등 소비자 피해가 반복됐지만 실질적인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가 이어지면서 집단소송제 도입 논의가 다시 분수령에 섰다. 피해는 광범위하게 발생했지만 책임과 보상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채 방치돼 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8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집단소송법 개정안을 심의할 예정이다. 정부와 여당은 집단소송제를 민생·안전 핵심 입법 과제로 추진하고 있어 법안 처리에 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논의의 핵심 쟁점은 적용 범위 확대와 함께 소급 적용 여부다. 현재 발의된 법안들은 내용과 범위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균택 의원안은 법 시행 이전 발생한 사건에도 손해배상 청구를 허용하는 소급 적용 규정을 포함하고 있다. 반면 다른 법안들은 소급 적용을 명시하지 않거나 시행 이후 사건부터 적용하도록 하는 등 입장이 엇갈려 있다.

이처럼 법안별로 적용 범위가 다른 만큼 최종 입법 과정에서 소급 적용 포함 여부가 가장 큰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법안이 어떤 방향으로 정리되느냐에 따라 최근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겪은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와 쿠팡이 영향권에 들어갈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소급 적용이 포함될 경우 이미 발생한 해킹 및 개인정보 유출 사건까지 집단소송 대상이 될 수 있어 기업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 통신 3사는 사고 수습 과정에서 이미 약 2조원 이상의 비용을 지출한 것으로 알려져 추가 소송이 이어질 경우 재무적 부담이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소급 적용 범위를 둘러싼 논의 과정에서 개인정보 유출 대응을 둘러싼 이른바 ‘버티기 전략’ 논란이 제기됐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쿠팡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확산되고, 통신사 등 다른 기업으로까지 부담이 전이될 수 있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집단소송 제도 자체도 기업 부담을 키울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피해자가 개별적으로 참여하지 않아도 소송 결과가 적용되는 ‘옵트아웃’ 방식과, 손해액 산정 이전에 책임을 먼저 확인하는 ‘책임확인소송’ 제도가 도입 논의에 포함돼 있다.

문제는 피해 구조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례 등에서 보듯, 대규모 피해가 발생해도 개별 소송 구조에서는 피해 입증과 비용 부담이 소비자에게 집중되면서 실질적인 구제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반복돼 왔다. 피해 규모에 비해 책임을 묻는 절차가 지나치게 어렵고 길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대규모 피해가 발생해도 개별 소송으로는 보상을 받기 어려운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며 “집단소송제 도입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입증 책임과 비용 부담이 피해자에게 집중된 구조에서는 실질적인 구제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들이 집단소송 제도를 운영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제도 도입이 제한적인 국가에 속해 있다는 점도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제도 개선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된다.

지난달 12일 청와대 앞에서 소비자 단체 회원들이 집단소송법 도입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집단소송제는 1990년대 후반부터 논의됐지만 전면 도입에 이르지 못한 대표적 장기 입법 과제로 꼽힌다. 2003년 증권 분야에 한정한 집단소송제가 도입된 이후에도 소비자 피해 전반으로의 확대 논의는 국회마다 반복됐지만 기업 부담과 소송 남발 우려를 둘러싼 갈등으로 번번이 무산됐다. 2020년에는 전면 도입 법안이 추진되며 전환점이 마련됐지만 적용 범위와 ‘옵트아웃’ 방식, 징벌적 손해배상 등을 둘러싼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결국 입법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정부와 여당은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개별 소송으로는 피해 구제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기업 책임을 묻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재계에서는 법 시행 이전 사건까지 책임을 확대할 경우 법적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기업이 예측하지 못한 과거 리스크까지 부담하게 될 경우 경영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디스커버리(증거 개시) 제도, 입증 책임 전환,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 논의까지 확대되면서 기업의 법률 대응 부담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결국 이번 입법 논의는 단순한 제도 도입 여부를 넘어 반복되는 대규모 소비자 피해에 대해 책임과 보상을 어떻게 작동시킬 것인지에 대한 문제로 귀결된다. 지금까지 작동하지 못했던 피해 구제 구조를 그대로 둘 것인지, 아니면 제도를 통해 바꿀 것인지가 핵심 쟁점이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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