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와의 전쟁…중동발 에너지 쇼크·생필품 가격상승에 총력전

2026-04-09 13:00:02 게재

공공요금 동결·PC 무상 지원·통신비 경감·학원비 관리 강화 등 추진

중동전쟁 품목별 가격동향 점검 … 수급 불안정한 나프타 등 규제완화

정부가 고물가 흐름을 차단하기 위해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전방위 대응에 나섰다. 중동전쟁 장기화에 따른 에너지 가격불안과 환율급등이라는 대외 악재 속에서, 공공요금은 동결하기로 했다.

석유 최고가격제 지정 등을 통해 에너지 가격상승을 억제하고 나프타 등에 수입규제 특례를 적용한 데 이어 컴퓨터, 통신비 등 필수재 관리에도 착수했다.

최근 메모리 가격이 급등하자 정부·공공기관 등이 사용하던 PC를 취약계층에 무상으로 전달한다. 또 휴대폰 데이터 요금제에 안심 옵션을 의무화하고 2만원대 5G 요금제 출시를 추진한다. 통신사 요금 개편으로 연간 3700억원 이상의 절감 효과가 발생할 전망이다.

정부는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주재로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TF’를 열고 이같은 대책을 발표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TF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중동발 물가상승 압력 가중 = 정부가 필수재까지 관리 범위를 넓힌 것은 물가상승 압력이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어서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년보다 2.2% 상승하며 중동사태에도 비교적 안정적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중동전쟁 여파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10달러 안팎까지 치솟고, 국내 휘발유 가격은 7일 기준 리터당 1968원을 기록하면서 물가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달 석유류는 최고가격제 시행에도 전년보다 9.9% 상승하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인 2022년 10월(10.3%) 이후 3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강기룡 재경부 차관보는 전날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만약 석유류 가격이 지난해와 동일한 수준이었다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대 후반이었을 것”이라며 “최고가격제를 시행하지 않았다면 지난달 물가 상승률은 2.8%를 기록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나프타 등 수급 불안이 가중되면서 공업제품 가격도 상승해 물가 부담을 키우고 있다. 지난달 에너지 물가지수는 2015년 1월, 공업물품 물가지수는 1985년 1월 이후 각각 최고치를 기록했다.

공산품 분야에서는 폴리에틸렌(PE) 등 나프타 파생 원료 가격이 20~50%, 페인트 용제는 55% 각각 상승했다.

이 같은 추세에 최근 해외 투자은행(IB)과 국내외 기관들은 물가 전망을 잇달아 상향 조정하고 있다. 주요 IB 8곳이 제시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지난 2월 말 평균 2.0%에서 3월 말 2.4%로 0.4%p 상승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7%, 아세안+3 거시경제조사기구(AMRO)는 2.3%로 각각 직전 전망보다 0.9%p, 0.4%p 상향 조정했다.

◆상반기 공공요금 동결 = 정부는 물가 집중관리품목 43개를 선정하고 매일 가격 동향을 점검하고 있다. 먹거리, 휘발유 등 필수재부터 오피스텔 관리비, 통신비 등 국민 체감도가 높은 품목에 대한 물가 안정 대책도 잇따라 발표했다.

특히 정부는 서민 생활에 직접 타격을 주는 공공요금의 상반기 동결 기조를 명확히 했다. 전기·가스요금 등 에너지 요금은 물론 하수도 등 지방 공공요금까지 인상 요인을 최대한 흡수해 억제한다는 방침이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최근 국회 답변에서 “환율이 1500원대를 돌파하는 등 대외 지표가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나, 공공요금 인상을 최대한 억제해 국민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밝힌 바 있다.

통신비 등 고정 지출 부담을 낮추기 위한 정책도 병행한다. 저가 요금제 출시 유도와 함께 단말기 유통 구조 개선을 통해 실질적인 통신비 경감을 추진 중이다.

서민들의 가장 큰 고충 중 하나인 학원비 관리는 더욱 강력해진다. 교육부와 관계부처는 ‘학원 교습비 관리 강화 방안’을 통해 교습비 초과 징수 등 위법 행위에 대해 엄정 대응하기로 했다. 교습비 초과 징수 등으로 얻은 부당이득을 환수하기 위해 매출액의 50% 이내에서 부과할 수 있는 ‘과징금 제도’를 신설한다. 교습비 거짓 표시 등 법 위반 행위에 대한 과태료 상한도 기존 3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대폭 올린다.

◆안쓰는 공공PC로 취약층 지원 = 정부는 내용연수가 지난 불용 PC의 재활용 비율을 높여 취약계층 지원 사업에 활용한다. 조달청 물품관리시스템을 통해 각 부처의 내용연수 경과 PC 현황을 정기적으로 조사하고, 지원 가능한 PC를 선별한다.

정부가 ‘사랑의 그린 PC’와 ‘AI 디지털 배움터’ 사업을 수행하는 지방정부에 PC를 무상 양여하면, 각 지방정부가 기기를 정비해 취약계층에 전달하는 방식이다. 정부에 따르면 연간 8만여 대의 불용 PC가 발생하는데, 이 중 2만2000여 대가 폐기된다. 남은 5만8000여 대 중 무상 양여 비율은 약 25% 수준으로, 이를 대폭 확대할 방침이다.

이번 대책은 반도체 호황에 따른 D램 가격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됐다. 지난해 1분기 3.9달러였던 DDR5 16GB 메모리는 올해 29.5달러까지 상승했다.

이에 따라 주요 제조사의 PC·노트북 판매가격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 지난달 컴퓨터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보다 12.4% 상승하며 지난 2월(10.8%)에 이어 2개월 연속 두 자릿수 증가세를 이어갔다.

강기룡 차관보는 “젊은 계층은 노트북이나 PC 없이 학업 활동을 하기 어렵다”며 “여력이 된다면 구매하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저소득층 학생 대상 PC·노트북 구매 지원 단가를 상향하고 지원 규모도 확대한다. 저소득층 가구 학생들이 충분히 지원받을 수 있도록 추가경정예산에 포함된 지방교육재정교부금 4조8000억원을 활용해 각 시도교육청의 지원 확대를 유도한다. 최근 가격 상승세를 반영해 1인당 지원 기준 단가(104만2000원) 상향도 추진한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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