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엔 강했지만 달러 균열 깊어져
제재 남용이 달러 신뢰 약화 불러…위안화·암호화폐가 우회로
로이터에 따르면 7일(현지시간) 중동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시장은 달러를 안전자산으로 받아들였다. 당시 로이터는 분쟁 국면에서 달러가 강세를 보였고, 미국이 순에너지 수출국이어서 유럽보다 중동발 에너지 충격에 덜 취약하다는 점이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휴전 발표 뒤 시장 반응은 예전과 달랐다. 9일 달러는 전날 급락 뒤에도 반등에 애를 먹었다. 유로화는 0.3% 오른 1.1698달러를 기록했고, 장중 한때 1.1721달러까지 올라 한 달 만의 최고치를 찍었다. 파운드화도 0.27% 오른 1.343달러를 나타냈다.
반면 달러는 엔화 대비 0.27% 오른 159.02엔을 기록했지만, 전날 한때 158엔 아래로 밀렸던 흐름을 완전히 되돌리지는 못했다. 휴전이 불안정하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도 이어졌는데도 달러 반등 폭은 제한됐다.
로이터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추가 공습과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에도 달러 반등이 제한됐다고 전했다.
일본 미쓰비시UFJ금융그룹의 데릭 할페니도 "전체 휴전이 여전히 불안정하지만 달러 움직임은 크지 않았다"고 말했다. 위기 때마다 달러가 일방적으로 강세를 보이던 흐름이 예전 같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일자 대니얼 데이비스의 칼럼에서 이번 달러 약세 흐름을 일시적 시장 반응이 아니라 미국의 금융 제재 남용이 낳은 구조적 균열의 신호로 해석했다.
그는 미국의 가장 강력한 지정학 수단 가운데 하나였던 달러 시스템 접근 차단 위협이 이제는 예전만큼 두렵지 않게 됐다고 진단했다.
러시아는 2022년 국제 은행간 결제 결제망인 스위프트(SWIFT)에서 배제되고도 전쟁을 이어갔고, 일부 선박은 안전 통항을 위해 이란에 최대 200만달러를 냈다. FT는 이란이 원유 배럴당 1달러 상당의 통행료를 암호화폐로 요구할 가능성까지 시사했다고 전했다. 특히 이란이 중국과의 교역에서 위안화 결제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은 제재국들이 달러 밖 거래망을 통해 충격을 흡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읽힌다.
FT의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미국이 달러를 제재 수단으로 자주 사용할수록 다른 나라들에는 달러를 피할 유인이 더 커진다는 것이다.
이란은 중국과의 거래를 통해 위안화 결제를 활용하고, 그림자 금융망과 암호화폐 같은 우회 수단도 넓혀 왔다. 미국의 제재 효력은 장기적으로 약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렇다고 달러의 위상이 당장 꺾인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실제 로이터는 일부 기관들이 연준의 첫 금리 인하 시점을 9월 이후로 늦추거나 올해 인하가 없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고 전했다. 안전자산 지위와 상대적으로 높은 미국 금리라는 버팀목까지 당장 흔들리는 현실은 아니라는 관측이 나온다.
위기 국면에서는 달러가 여전히 가장 강한 피난처다. 그러나 휴전 이후에는 달러의 절대적 우위가 예전 같지 않다는 점도 확인된다.
이번 중동 위기는 달러 체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낸 사건으로 읽힌다. 달러는 아직 가장 강한 통화이지만, 예전처럼 흔들림 없는 통화만은 아니라는 점도 드러났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