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란 21시간 협상 결렬…종전 첫 관문서 충돌
핵·호르무즈·레바논 전선 평행선…“최종안 vs 과도한 요구”
미국과 이란이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진행한 21시간 마라톤 협상이 끝내 결렬됐다. 뉴욕타임스(NYT), CNN, AP통신, 월스트리트저널(WSJ), 블룸버그 등을 종합하면 JD 밴스 부통령과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가 이끄는 양측 대표단은 12일(현지시간) 새벽까지 협상을 이어갔지만 전쟁 종식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번 회담은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이후 양국 간 최고위급 대면 접촉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지만, 핵심 쟁점에서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며 첫 협상부터 난항을 드러냈다.
AP통신과 블룸버그에 따르면 협상은 11일 오후 시작돼 이날 이른 아침까지 약 21시간 동안 이어졌다. 미국-이란-파키스탄 3자 협상은 자정이 넘어가면서 한차례 휴회를 한 뒤 다시 재개됐으며, 초기 대면 회담 이후에는 기술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단계로 넘어가 문안 교환과 세부 협의가 병행됐다. 협상 의제는 호르무즈 해협 통제, 휴전 연장, 단계적 제재 완화, 핵 프로그램 문제 등 광범위하게 설정됐지만, 주요 사안에서 양측이 서로 양보하지 않으면서 결국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미국은 협상 결렬의 책임을 이란에 돌렸다. 밴스 부통령은 “나쁜 소식은 우리가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점”이라며 “이란은 우리의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매우 단순한 제안을 남기고 떠난다. 이는 우리의 최종적이자 최선의 제안”이라고 밝혀 사실상 협상의 마지막 카드를 제시했음을 강조했다. 그는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는 명확한 확약과 함께,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과 수단까지 포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는 단순한 선언을 넘어 우라늄 농축과 핵물질 보유 방식 전반을 제한하는 강한 조건으로 해석된다. 밴스 부통령은 오전 7시 8분 전용기에 탑승해 귀국길에 올랐다.
협상 과정에서 미국은 외교·군사 라인을 동시에 가동하며 압박과 협상을 병행했다. CNN에 따르면 밴스 부통령은 협상 기간 동안 도널드 트럼프과 수차례 통화했고,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피트 헤그세스 미 전쟁부(국방부) 장관, 브래드 쿠퍼 중부사령관 등과도 지속적으로 의견을 교환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가 이뤄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며 “어느 쪽이든 미국은 승리한다”고 말해 협상 중요성을 낮추는 듯한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반면 이란은 협상 결렬 책임이 미국에 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WSJ와 이란 국영 매체들에 따르면 이란은 미국의 요구를 “과도한 요구”로 규정하며 합의 실패 원인으로 지목했다. 갈리바프 의장은 “우리는 선의는 있지만 신뢰는 없다”고 밝혔고, 이스마일 바가이 외교부 대변인은 “외교 성과는 상대의 진지함과 과도한 요구 중단, 그리고 이란의 정당한 권리 인정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란은 핵무기 개발 의도는 없지만, 평화적 핵 기술 이용 권리는 포기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이번 협상의 최대 쟁점은 호르무즈 해협과 핵 프로그램이었다. WSJ와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란은 해협 통제권 유지와 제재 해제, 레바논 공습 중단 등을 요구했고, 미국은 해협 개방과 핵 프로그램 제한을 요구했다. 특히 우라늄 농축 중단과 고농축 핵물질 반출 문제에서 양측 입장은 끝내 좁혀지지 않았다.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5분의1이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 상태에 놓이면서, 협상 결렬은 글로벌 에너지 시장 불안을 더욱 키울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협상은 파키스탄의 중재 아래 진행됐다. AP통신에 따르면 양측은 수석 대표단 회담 이후 기술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단계로 넘어가 세부 문안 협상을 이어갔고, 일부 실무 협의는 협상 종료 이후에도 계속됐다. 파키스탄은 협상 장소와 일정 공개를 최소화하면서도 외교 중재자로서 존재감을 확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스라엘 변수도 협상을 흔드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간 입장 차가 드러났고, 이스라엘은 레바논 공습을 계속했다. 이란은 이를 휴전 위반으로 규정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레바논 전선이 협상 대상에 포함될지 여부 역시 양측 간 이견이 큰 사안으로, 종전 협상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결국 이번 협상은 결렬됐지만 외교의 문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다. 밴스 부통령은 “최종적이고 최선의 제안”을 남겼다고 밝히며 공을 이란의 몫으로 넘겼고, 이란 역시 외교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바가이 외교부 대변인은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외교를 통해 이란 국민의 권리와 이익을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한다”면서 “외교는 국가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수단이다. 외교관들은 전쟁 시기든 평화 시기든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외교협상의 문을 닫지 않았음을 시사한 것이다.
다만 호르무즈 해협, 핵 문제, 레바논 전선 등 핵심 쟁점이 그대로 남아 있는 만큼 단기간 내 종전 합의 도출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외신들은 이번 협상이 신뢰 구축 이전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향후 협상은 장기전 양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휴전으로 인해 전쟁은 일시적으로 멈췄지만, 평화로 이어질 해법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