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화하는 봄의 엇갈림, 식탁 물가까지 위협
‘온난화로 꽃 일찍 핀다’는 통념 깨져 … 시간표 잃은 벌, 세계 경제 손실 최대 7290억달러 전망
기후변화로 ‘페놀로지 미스매치’ 현상이 심화하면서 식탁 물가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거리엔 꽃이 가득하지만 정작 꽃가루를 옮겨야 할 벌은 움직임이 활발하지 못해 일어나는 시간적 불일치 문제는 생태계는 물론 인간의 경제적 활동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수억년 동안 맞춰온 꽃과 벌의 약속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조용히 어긋나고 있다. 페놀로지는 △개화 시기 △새의 산란일 △곤충 부화일 등 계절 생물 현상을 총칭하는 말로, 이른바 ‘지구의 맥박’이라 불린다.
13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의 논문 ‘식물 기능군과 건조도가 기후변화의 식물 페놀로지 영향을 조절한다’에 따르면, 식물이 잎을 틔우거나 꽃을 피우는 시기는 기온과 강수량의 상호작용, 그리고 식물의 뿌리 깊이와 가뭄 내성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달라진다.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하면 꽃이 일찍 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훨씬 복잡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의미다. 어떤 꽃은 더위에 더 일찍 피고 어떤 꽃은 오히려 늦어진다. 그 차이를 결정하는 건 기온만이 아니라 비의 양, 그리고 식물의 종류다.
중국과학원 티베트고원연구소·베이징대·미국 노스웨스턴대 등 국제 공동연구팀은 전세계 55개 실험지에서 수집한 잎 출현 시기 데이터 2178건과 117개 실험지의 개화 시기 데이터 4027건을 한꺼번에 분석(메타분석)했다. 또한 연구 지역을 건조·반건조·반습윤·습윤 4구간으로 나눠 분석했다.
그 결과, 반건조 지역에서는 온난화와 강수 증가가 함께 작용할 때 잎 틔우는 시기를 더욱 크게 앞당기는 상승 효과가 나타났다. 반면 화본과(벼·보리류)와 사초과(습지 풀류) 식물에서는 온도와 강수가 서로 효과를 상쇄하는 길항 효과가 관찰됐다. 온난화와 강수 증가가 결합하면 오히려 꽃 피는 시기가 늦어지는 경우도 확인됐다. 물이 너무 많아지면 토양 속 산소 확산과 광합성 효율이 떨어지면서 온난화가 개화를 앞당기는 효과를 상쇄하는 것이다. 뿌리가 얕은 식물은 강수 변화에 더 취약했고 뿌리가 깊은 콩과(두과) 식물은 표층 수분이 줄어도 깊은 곳의 물을 활용하는 일종의 ‘가뭄 회피 전략’을 구사했다.
◆기후변화로 커진 생태 시차 불확실성 = 이처럼 꽃 피는 시기가 제각각 달라지면 벌·나비 등 수분자(꽃가루 매개자)와 꽃 사이의 시간적 불일치, 이른바 ‘봄의 엇갈림’이 훨씬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해진다. 어떤 식물은 더 일찍, 어떤 식물은 오히려 늦게 피면서 수분자와의 만남이 더 어긋날 수 있다.
물론 이 연구에도 한계는 있다. 건조 지역은 지구 육지 면적의 약 45%를 차지하지만 관련 조작 실험 데이터가 부족해 이 지역에 대한 예측 정확도가 낮다. 또한 분석 대상이 초본 식물에 한정돼 숲을 이루는 목본 식물(나무류)로 일반화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사실은 명확하다. 기후변화가 봄의 시간표를 바꾸는 방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하다는 점이다. 더욱이 이에 따른 영향은 생태계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번지고 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의 논문 ‘유럽 야생 수분자 붕괴의 경제·농업·식량안보 파급 효과’에 따르면, 2030년까지 유럽의 야생 수분자가 완전히 사라지는 시나리오에서 유럽 작물 수확량은 평균 8% 감소하고 전세계 연간 후생 손실(경제적 피해)은 340억유로에 달했다.
독일 호엔하임대 연구팀은 유럽 공동농업정책(CAP) 분석에 쓰이는 정밀 농업경제 모델 ‘CAPRI’를 활용해 △작물 생산량 변화 △가격 충격 △무역 구조 변화 △소비자·생산자 후생 변화 등을 단계적으로 추산했다. 다른 나라가 생산을 늘리고 무역이 활발해지는 방식으로 시장이 스스로 균형을 찾으려 해도 이미 오른 식품 가격은 내려오지 않는다. 수분 의존 작물의 생산자 가격은 평균 18.6% 오르는 반면 생산량은 15.5% 줄었다. 결국 비싸진 장바구니를 드는 것은 소비자의 몫이다.
◆생물다양성 보호 외면 국가, 피해 더 커 = 지역별 피해도 균등하지 않았다. 야생 수분자 의존도가 높은 우크라이나가 후생 손실이 8.6%로 가장 컸다. 유럽연합(EU) 내에서는 스페인이 3.7%로 최고였다. 특히 생물다양성 보호 정책에 소극적이었던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더 큰 경제적 타격을 받는 걸로 분석됐다.
또한 연구팀이 ‘자연복원법’과 ‘지속가능사용규정’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진 의원 비율과 소비자 후생 손실을 대조한 결과,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음의 상관관계가 확인됐다. 다만 연구팀은 이것이 인과관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생물다양성 정책에 저항해온 국가일수록 수분자 붕괴로 입는 경제적 손실이 더 크다는 뜻이다. 논문은 이를 두고 “생태적 취약성과 정치적 입장 사이의 잠재적 불일치”라고 표현했다.
피해는 유럽에 그치지 않는다. 국제학술지 ‘생태경제학’의 논문 ‘수분자 감소, 국제 무역, 글로벌 식량 안보: 전세계 경제·영양 영향 재평가’에 따르면, 전세계 수분자가 완전히 붕괴하는 시나리오에서 농작물 가격은 평균 30% 상승했다. 또한 국제 후생 손실은 7290억달러, 전세계 GDP(국내총생산)의 0.9%에 달할 걸로 추산됐다.
비타민A 가용량은 전세계적으로 8.1% 줄고 철분과 비타민C도 각각 12%대 감소가 예상됐다. 특히 서아시아는 비타민A 가용량이 23.7%, 폴리네시아는 27.4%나 급감하는 등 지역별 편차가 컸다. 이 논문에서는 전세계 작물 생산 가치의 17%, 국제 농산물 교역액의 28%가 수분 서비스에 의존하고 있어 피해가 무역을 통해 전세계로 전파된다는 점도 확인됐다. △커피·코코아 등 기호작물 가격은 155% △견과류는 108% △ 과일류는 79% 급등하는 시나리오도 제시됐다.
세계 주요 작물의 75%가 동물 수분자에 의존하거나 혜택을 받는다. 수분 서비스의 전세계 경제적 가치 역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봄의 엇갈림이 단순한 생태 현상이 아닌 이유다. 꽃과 벌의 시간표가 어긋날수록 그 청구서는 결국 밥상 앞에 앉은 우리에게 날아온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