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부 지급각서, 확정채무 아냐”

2026-04-20 13:00:26 게재

KT스카이라이프, 디코커머스 상대 양수금 항소심 패소

‘자금 유치 시’ 문구는 정지조건 판단 … 변제 의무 부정

케이블·위성방송사업자 KT스카이라이프가 전자제품 유통업체를 상대로 제기한 억대 양수금 청구 항소심에서 1심 판결과 달리 패소 판결을 받았다. 지급각서를 근거로 채무를 인정했던 1심과 다르게 2심은 이를 외부자금 유치를 전제로 한 조건부 약정으로 보고 확정적 채무 인수를 부정했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민사5-3부(강성훈 부장판사)는 지난 9일 KT스카이라이프가 디코커머스를 상대로 낸 양수금 소송에서 “1심 판결 중 피고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그에 해당하는 원고(KT스카이라이프)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사건의 발단은 제3자인 A사가 KT스카이라이프 소유의 전자제품을 보관하던 중 이를 무단으로 처분하면서 시작됐다. 이로 인해 A사는 KT스카이라이프에 25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채무를 지게 됐고, 이를 갚기 위해 디코커머스로부터 받은 물품대금 채권(5억1000만원)을 KT스카이라이프측에 양도했다.

쟁점은 디코커머스가 A사에 작성해 준 지급각서였다. 해당 각서에는 ‘외부기관의 자금 유치가 이루어질 경우, 입금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채무를 최우선 변제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KT스카이라이프는 이를 확정적 지급의사로 보았으나 디코커머스는 자금 유치가 되지 않았으므로 지급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다고 맞섰다.

1심은 디코커머스와 A사의 관계를 근거로 디코커머스가 해당 금액을 책임져야 한다고 보았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판단을 달리했다.

재판부는 “지급각서는 외부기관의 자금 유치를 전제로 한 단계적 이행 구조를 정한 것에 불과하다”며 “실제로 외부 자금 유치가 성공했다는 증거가 없는 이상 피고의 지급의무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어 “조건이 성취되지 않은 이상 변제의무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채권 자체도 이미 소멸했다고 봤다. 디코커머스는 채권양도 통지 이전인 2023년 11월 A사에 1억900만원을 지급했는데 이를 기존 물품대금 채무에 대한 변제로 인정했다. 민법상 변제충당 법리에 따라 해당 금액이 먼저 발생한 채무에 충당되면서, 양도 대상 채권은 이미 소멸했다는 것이다. 또 거래 내역 등을 종합할 때 채권 양도 당시 실제 잔존 채권 규모 역시 명시된 금액보다 적었을 가능성도 지적했다.

결국 항소심은 지급각서에 따른 채무 인정과 채권 존부 모두를 부정하면서 KT스카이라이프의 양수금 청구를 전부 기각했다.

박광철 기자 pkcheol@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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