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근 ‘50조 재정다이어트’ 예고…낡은 재정관행 깨고 ‘AI·에너지 전환’ 집중
학령인구 감소 역행 ‘교육교부금’ 1순위 … 내국세 연동제 손질 유력
실업급여 등 복지예산도 ‘성역 없다’ … 6월 국가재정전략회의 분수령
아낀 재정 AI 대전환·지방주도성장 투자 … ‘전시재정’ → ‘미래재정’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 편성에서 역대 최대 규모인 ‘50조원대 지출 구조조정’ 승부수를 던졌다.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취임 후 첫 예산안 편성의 키워드로 ‘강력한 체질개선’을 내걸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성역으로 여겨졌던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과 기초연금 등 복지예산 항목들이 대대적인 수술대에 오를 전망이다.
21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획예산처는 내년 예산안에서 재량지출 15%, 의무지출 10%를 각각 감축해 약 50조원의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정부 관계자는 “검토 중인 재정지출구조조정은 단순한 예산 삭감을 넘어, 아낀 재정을 우리 경제의 성장 패러다임을 인공지능(AI)과 에너지 전환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한 재정의 전략적 재배치”라고 설명했다.
◆1순위로 교육교부금 거론 = 이번 구조조정의 첫 칼날은 교육교부금을 향하고 있다.
현행법상 중앙정부는 내국세의 20.79%를 시도 교육청에 의무적으로 배정해야 한다. 문제는 학령인구는 급감하는데 내국세가 늘어나면 교부금도 자동으로 늘어나는 ‘자동 증가’ 구조에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에 따르면, 현행 제도를 유지할 경우 학령인구(6~17세) 1인당 평균 교부금액은 2020년 1000만원에서 2050년 3650만원으로 3배 이상 폭증한다.
기획예산처 내부에선 교육교부금이 남아돌아 본래 목적과 무관한 선심성 사업에 소진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로 일부 교육청이 모든 학생에게 스마트기기를 무상 지급하거나, 교육 재난지원금 명목으로 현금을 살포하는 등 ‘예산 밀어내기’식 사업이 손꼽힌다.
기획예산처는 이러한 재정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 교육부 등과 협의해 내국세 연동률을 단계적으로 낮추는 제도 개선에 착수할 방침이다.
◆기초연금 등 복지지출도 ‘효율화’ = 의무지출 중 덩치가 큰 기초연금과 실업급여도 개편 대상이다. 인건비나 국방비처럼 줄이기 어려운 경직성 예산을 제외하면, 결국 수십 조 단위의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법령에 의해 지급이 강제되는 ‘의무지출’의 제도적 틀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복지지출을 일괄적으로 줄이면 복지수혜층이 강력히 반발할 수 있다는 점이 난제다.
현재 기초연금은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에게 지급하고 있다. KDI 분석에 따르면 인구 고령화로 지출 규모가 2025년 27조원에서 2050년 46조원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정부는 지급 대상을 ‘소득 하위 40~60%’로 축소하거나, 향후 증액분에 대해 하후상박(下厚上薄) 방식을 적용해 예산 증가 폭을 억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소득이 낮은 노인에게는 더 많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노인에게는 적게 인상분을 배분해 전체적인 예산 자연 증가분을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고용 안전망의 핵심인 실업급여(구직급여)도 ‘도덕적 해이’와 ‘재정 누수’를 막기 위한 수술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현재 180일만 고용보험을 납입하면 횟수 제한 없이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구조 탓에 일부 수급자가 최저임금 근로자보다 더 많은 돈을 받는 ‘소득 역전 현상’이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왔다.
정부는 실업급여 수급을 위한 기여 기간을 연장하거나, 반복 수급 시 급여액을 삭감하는 등의 제도 개선을 통해 예산 증가를 억제할 방침이다. 박홍근 장관은 최근 인터뷰에서 “재량지출뿐만 아니라 의무지출도 10%를 줄이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며, 이를 통해 마련된 재원을 AI 전환 등 국가의 미래를 위한 필수 과제에 우선 투입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표심’보다 ‘지속가능성’에 무게 = 정부는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6월 초 열릴 예정인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이러한 의무지출 제도 개선안을 포함한 ‘100대 재정 혁신 과제’를 확정할 예정이다. 지방선거 직후라는 시점에도 불구하고 고강도 복지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것은 그만큼 재정 상황이 절박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최근 IMF 재정모니터가 경고한 ‘글로벌 부채 위기’ 상황에서 한국의 재정 건전성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인 셈이다.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교육교부금과 기초연금 등 덩치가 큰 의무지출은 제도 개선 없이는 감축이 불가능하다”며 “학령인구 감소와 인구 구조 변화라는 현실을 반영해 관계부처와 긴밀히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고강도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재정 건전성을 지키면서도 미래 먹거리와 민생 안정에 투자할 실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앞서 박 장관은 내년 예산을 “이재명정부의 국정목표가 온전히 반영되는 ‘대전환의 예산’”으로 정의했다. 구조조정으로 마련된 재원은 AI 대전환 인프라 구축, 소형모듈원전(SMR) 등 차세대 에너지 기술 개발에 우선 투입될 예정이다. IMF가 최근 재정모니터 보고서에서 AI를 통한 생산성 제고를 세계 경제의 상방 요인으로 꼽은 것과도 맥을 같이 한다.
중동전쟁 장기화에 따른 복합 위기 대응도 핵심 과제다. 박 장관은 이미 처리된 26조2000억원 규모의 추경 예산을 신속히 집행해 민생 현장의 온기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특히 물가 상승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고유가 피해지원금’ 지급 대상과 규모를 내달 중 확정해 조속히 집행할 계획이다.
다만 교육교부금 연동제 폐지나 기초연금 수급 대상 축소 등은 법 개정이 필요하고 이해관계자가 많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이 때문에 박 장관이 제시한 ‘50조원’이라는 목표치가 실제 인건비 등 경직성 비용을 제외하고 얼마나 실질적인 수치로 구현될지도 관전 포인트다.
정부 관계자는 “전 세계 부채 비율이 100%를 향해 가는 상황에서 한국의 재정 건전성은 우리 경제의 최후 방어선”이라며 “불요불급한 지출은 과감히 줄이되, AI 등 미래 경쟁력과 취약계층 보호에는 재정의 역할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