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기술 입은 휴머노이드, 인간 기록 넘었다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라이트닝’
폴더블폰의 ‘힌지 기술’, 관절에 접목
게이밍폰에 쓰이는 ‘냉각 기술’ 응용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 아너(Honor)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베이징 하프 마라톤에서 인간의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완주에 성공했다. 이번 결과는 지난 10년간 스마트폰 산업에서 쌓아온 제조 역량과 부품 공급망이 로봇 분야와 결합했을 때 발생하는 시너지를 입증한 사례로 평가된다.
20일 중국 차이신글로벌과 제일재경 등에 따르면 지난 19일 열린 베이징 하프 마라톤에서 아너의 자율주행 휴머노이드 로봇 ‘라이트닝(Lightning)’이 21km 구간을 50분 26초 만에 완주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인간 세계 기록(57분 20초)보다 약 7분이나 앞선 기록이다. 특히 지난해 우승 로봇의 기록이 2시간 40분대였음을 고려하면 불과 1년 만에 로봇의 기동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아너의 왕 아이 임바디드 AI(Embodied AI, 체화된 AI) 전략 책임자는 “회사에 로봇 개발팀이 꾸려진 지는 1년이 됐고 대회 준비 기간은 6개월밖에 되지 않았다”면서 이번 성과의 핵심 동력으로 아너가 10년간 쌓아온 스마트폰 제조 경험을 꼽았다.실제 라이트닝에는 스마트폰 제조에서 검증된 엔지니어링 기술이 대거 투입됐다. 로봇의 골격에는 폴더블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강철 힌지 기술이 적용돼 90kg 성인이 턱걸이 10개를 해도 견딜 수 있는 내구성을 확보했다.
고속 주행 시 발생하는 모터의 발열 문제는 고성능 게이밍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마이크로 팬과 자체 개발 냉각 기술로 해결했다. 아너의 액체 냉각 시스템은 모세혈관처럼 모터 깊숙이 침투해 분당 4리터 이상의 열 교환 유량을 달성함으로써 장시간 고속 주행에도 안정적인 성능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또한 경주 도중 멈추지 않고도 배터리를 교체할 수 있는 ‘듀얼 배터리 설계’로 시간 손실을 최소화했고 SUV 차량에 버금가는 최대 400뉴턴미터(Nm)의 토크를 내는 모터 모듈도 탑재됐다.
로봇 모션 시스템 개발사인 브리지DP 로보틱스의 샹양싱 CEO는 “아너의 승리는 막대한 자본 투입과 조직적 역량 덕분이지만, 올해의 성과는 근본적인 알고리즘 혁신보다는 하드웨어 엔지니어링의 승리에 가깝다”며 “앞으로는 폐쇄된 환경이 아닌 다양한 환경에서 적응할 수 있는 일반화 능력이 핵심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대회에는 아너를 비롯해 유니트리 로보틱스, 노에틱스 로보틱스 등 여러 회사에서 제작한 100여대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참가했다. 이는 전년 대비 5배 증가한 수치로, 중국 내 로봇 산업이 실험실 단계에서 엔지니어링 실증 단계로 전환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참가 로봇 중 약 40%는 자체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이용해 자율적으로 경주를 마쳤으나 나머지 60%는 여전히 원격 제어 방식에 의존했다. 일부 로봇은 출발선에서 균형을 잡지 못해 흔들리거나 장애물에 부딪치는 등 기술적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알리바바 그룹의 지도 플랫폼 아마프(Amap)는 이번 행사에서 미리 설정된 경로 없이도 도시 환경을 탐색할 수 있는 자율 로봇 안내견을 선보이며, 소프트웨어 중심에서 하드웨어가 결합된 ‘임바디드 AI’로의 패러다임 변화를 시사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로봇 산업에서 주목할 만한 변곡점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첫째는 원격 제어에서 로봇이 스스로 판단하는 ‘자율형 지능 에이전트’로의 진화이고 둘째는 단순히 작동하는 단계를 넘어 어떤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엔지니어링 단계로의 진입이다. 마지막은 인지, 의사 결정, 제어가 하나로 통합돼 시스템적으로 검증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상하이 주오이더 로봇의 리칭두 설립자는 “하드웨어가 완벽해지면 그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한 실질적인 응용 시나리오를 창출하는 것이 미래의 가장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너 역시 라이트닝의 기술적 성과를 바탕으로 향후 소매 비즈니스 시스템에 최적화된 로봇을 선보일 계획을 가지고 있다.
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