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공장서 일하다 유방암…법원 “산재”
엠코테크·SK하닉 14년 근무 황 모씨
근로복지공단 불승인에 행정소송
법원 “업무와 질병 인과관계 상당”
14년 동안 반도체 업계에서 일하다 유방암에 걸린 노동자가 법원에서 산재를 인정 받았다.
22일 인권단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0단독 조대현 판사는 지난 16일 40대 노동자 황 모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급여 불승인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황씨는 2003년 9월 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 광주사업장에 입사해 2014년 5월까지 약 10년 8개월 동안 반도체 조립 생산라인에서 몰드공정 오퍼레이터로 근무했다. 2018년 3월부터는 SK하이닉스 청주사업장 사내하청업체에서 반도체 클린룸 제조라인 식각(ETCH)공정 등의 오퍼레이터로 일했다. 그러던 중 2021년 6월 36세의 이른 나이에 유방암을 진단받았다.
가족력 등 특기할 만한 요인 없던 황씨는 2023년 3월 산재 요양급여 신청을 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심의결과에 근거해 요양불승인처분을 했다.
하지만 법원은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이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조 판사는 “원고가 앰코와 SK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동안 복합·누적적으로 노출된 여러 유해화학물질, 전리방사선, 과로 및 교대근무 등 작업환경상의 유해요소들이 이 사건 상병을 발병 또는 악화시킨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충분한 개연성이 증명됐다고 판단된다”며 “업무상 질병의 인과관계 증명의 정도에 관한 기준에 따르면, 이 사건 상병과 원고의 업무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봄이 합당하다”고 판결했다.
또 “동료 근로자 진술에 따르면, 원고가 근무한 앰코 사업장은 악취와 분진 발생이 심했고 근로자들이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은 채 유해물질로 의심되는 물질들을 취급했다. 환기장치의 고장과 경보음 미작동 등 작업환경이 다소 비정상적이었다. 근로자들이 열악한 근무조건에 따른 상당한 정도의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를 감내하며 근로를 제공했던 것을 알 수 있다”며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보면 앰코 사업장이 근로자들이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것을 방지할 안전설비 등을 충분히 갖추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을 불합리하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반올림은 이번 판결을 환영하는 한편 근로복지공단의 개혁을 촉구했다. 반올림은 홈페이지에 올린 성명서에서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3년간 반도체·디스플레이 노동자의 백혈병, 뇌종양 등 업무상 질병 산재 신청 사건 처분 16건 가운데 4건만 승인하고 나머지 12건은 모두 불승인했다”며 “불승인된 12건 중 11건은 역학조사가 생략된 채 부당하고 피상적인 이유로 불승인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치료와 생계의 경제적 정신적 육체적 어려움을 겪는 산재노동자 모두가 시간과 큰 비용을 들여 행정소송까지 내몰려야 하는가”라며 “규범적 판단을 받고 싶으면 산재소송을 하라는 식의 근로복지공단 태도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이자 사회보장제도로서 존재하는 산재보험의 취지를 망각하는 태도”라고 비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