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방어 나선 일본…골든위크 추가 개입 경고
160엔 돌파 뒤 엔화 급등
재무성 “휴일에도 시장 주시”
일본 정부가 엔화 약세를 막기 위해 외환시장 개입에 나선 뒤 추가 행동 가능성을 시사했다. 중동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수입 물가 부담이 커진 가운데 엔화 가치까지 급락하자, 일본 당국이 투기 세력에 경고장을 던진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 1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일본 재무성은 골든위크 연휴를 앞두고 반복적인 시장 개입 가능성을 제기했다. 일본의 외환정책을 총괄하는 미무라 아쓰시 재무관은 직접 개입 여부를 확인하지 않으면서도 “일본의 골든위크 연휴가 막 시작됐다는 점은 말해두겠다”고 말했다.
일본 재무상 가타야마 사쓰키도 기자들에게 연휴 기간 “스마트폰을 가까이 두라”고 말했다. 일본 시장이 닫힌 사이 해외 시장에서 기습 개입이 이뤄질 수 있음을 시사한 발언이다. 골든위크는 거래량이 줄어드는 시기라 같은 규모의 달러 매도·엔화 매수 개입도 시장에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이번 개입은 엔화가 달러당 160엔선을 넘어선 직후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FT는 한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엔화가 최근 한 달 동안 달러당 159엔 안팎에서 움직이다가 160.7엔까지 떨어진 뒤 155.50엔으로 2.5% 넘게 급등했다고 전했다. 골드만삭스 분석가들은 일본은행 자료를 토대로 일본 정부가 300억달러 이상을 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도 일본이 “최종 경고” 뒤 외환시장에 개입하면서 엔화가 3% 급등해 거의 2년 만에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미무라 재무관은 투기 세력을 향해 “빠져나가고 싶다면 마지막 조언”이라고 말했고, 가타야마 재무상도 “대담한 조치를 취할 시점이 가까워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단순한 환율 문제가 아니다. 일본은 에너지와 식품, 원자재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한다. 엔화가 약해지면 달러로 거래되는 원유와 식량 수입 비용이 커진다. 여기에 중동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뛰면서 가계와 기업 부담도 커지고 있다.
일본은행도 이례적으로 물가 경고를 냈다. FT에 따르면 일본은행은 지정학적 불확실성 때문에 물가가 기본 전망에서 “상당히 벗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약한 엔화와 높은 유가가 맞물릴 경우 일본 경제가 성장 둔화와 물가 상승을 동시에 겪을 수 있다는 의미다.
시장에서는 일본의 개입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미즈호의 채권·외환 전략가 조던 로체스터는 FT에 “일본이 이틀 연속 개입한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그렇다”며 “2022년과 2024년 모두 후속 개입을 했다”고 말했다.
다만 개입만으로 엔화 약세 흐름을 완전히 돌리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엔화는 투자자들이 싸게 빌려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는 ‘조달 통화’로 쓰이고 있다. 일본과 미국의 금리 차도 엔화 약세 요인이다. 블룸버그는 일본의 개입 전 미국 경제 당국자들이 통보를 받았다고 전했다.
일본 당국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엔화 약세가 물가와 에너지 충격을 키우는 상황에서 달러당 160엔선은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금리 차와 고유가, 달러 수요가 계속되는 한 일본의 외환개입은 시장 흐름을 바꾸기보다 투기 세력의 속도를 늦추는 방어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