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점’ 신평사, 품질 경쟁보다 현상 유지 안주
금융당국 제도 개선에도 효과 없어 … “신평사 징벌적 책임 강화”
국내 신용평가 시장은 나이스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3사가 주도한다.
국내 시장에서 1983년 가장 먼저 설립된 한국기업평가는 글로벌 3대 신평사인 피치와 방법론을 공유하며, 피치가 지분 73.55%를 소유한 외국계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다. 1985년 설립된 한국신용평가는 글로벌 1위 신평사인 무디스의 완전 자회사로, 글로벌 기준과의 정합성을 강조하는 곳이다. 1986년 설립된 나이스신용평가는 국내 자본으로 이루어진 유일한 대형 신평사로, 그룹 내 금융과 기업정보 인프라를 활용해 신용등급을 평가한다.
자본시장에서 신용평가사들은 ‘자본시장의 파수꾼’ 역할을 요구받는다. 하지만 투자자들과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국내 3대 신평사들이 견고한 과점 체제로 운영되면서 33%씩 시장을 점유하는 구조 속에서 품질 경쟁보다는 현상 유지에 안주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신용평가업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금융위원회의 엄격한 인가를 받아야 하는 규제 산업이다. 고도의 전문 인력, 이해상충 방지 체계,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갖춰야 하므로 초기 진입 장벽이 매우 높다.
이런 가운데 국내 신용평가 시장이 3사 과점 체제로 굳어진 데에는 ‘신용등급 쇼핑’ 방지라는 정책적 딜레마가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다. 제4의 신평사가 등장해 경쟁이 치열해지면, 신평사들은 고객(평가 수수료를 내는 발행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더 높은 신용등급을 미끼로 영업을 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등급을 주는 신평사를 골라서 계약하는 ‘등급 쇼핑’을 하게 되고, 이는 결국 시장 전체의 신용등급 인플레이션과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금융당국은 ‘경쟁 촉진을 통한 평가 품질 향상’이라는 명분과 ‘과당 경쟁으로 인한 등급 신뢰도 훼손’이라는 위험 사이에서, 현재의 3사 체제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방향을 유지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신용평가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2016년 신용평가시장 선진화 방안을 내놓으면서 제도 개선에 나선 바 있다.
대표적으로 ‘독자신용등급(SACP)’ 제도가 있다. 이는 대기업 그룹의 후광을 배제하고 기업의 독자적인 채무상환 능력과 재무 건전성만 평가하도록 한 조치로, 기업들의 등급 인플레이션과 왜곡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이다. 또한 피평가 회사에 대한 구두 의뢰 관행을 철폐하고, 신용평가 내용 및 등급 산정 근거에 대한 공시를 대폭 강화하도록 모범규준을 제정했다.
시장전문가들은 ‘뒷북 평가’가 반복되는 근본 원인은 신용평가 비즈니스 구조에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내 시장은 기업(발행사)이 신평사를 선택하고 수수료를 지불하는 ‘발행사 우위(Issuer-Pays)’ 모델이다. 신평사 입장에서는 우량 고객인 기업의 눈치를 보느라 선제적으로 등급을 낮추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있다.
평가사 순환제 및 제3자 요청 평가제도 검토 문제도 있다. 평가사 간의 과도한 수주 경쟁이 ‘등급 퍼주기’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기업의 신평사 선택권을 제한하거나, 독립된 기관이 평가를 의뢰하는 방식 등이 꾸준히 화두에 오르고 있다.
이와 함께 시장에서는 이번 제이알글로벌리츠 사태를 계기로 신평사에 대한 징벌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중대한 정보 공시가 있었음에도 이를 등급에 적절히 반영하지 않았을 경우, 투자자 피해에 대한 배상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발행사가 아닌 투자자가 수수료를 지불하는 ‘투자자 우위(Investor-Pays)’ 모델의 부분적 도입이나, 금융당국이 신평사를 강제 배정하는 ‘신용평가사 지정제’ 확대 등의 제도 개선 요구도 나온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