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 자진출석 체포영장 집행 “위법”
대법 “적법한 영장도 필요성 충족됐는지 살펴야”
성매매 혐의는 유죄 “위법수집 진술 없이도 인정”
체포영장이 적법하게 발부됐더라도 영장 집행 당시 체포 사유와 필요성이 없다면 위법한 체포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경찰 출석요구에 응해 약속한 시각에 경찰서에 자진 출석한 피의자를 ‘출석불응 우려’ 이유로 발부된 체포영장을 집행해 현장에서 곧바로 체포한 것은 위법이라는 취지다. 다만 위법한 체포에 의한 진술 없이도 범죄 혐의가 인정돼 피고인은 징역형이 확정됐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마용주 대법관)는 최근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성매매알선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 6개월과 벌금 1000만원, 추징 176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2020년 8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경기 의정부시 한 오피스텔에 자신 명의로 4개 호실을 임차한 뒤 성매매를 알선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자신이 경찰서에 자진 출석했음에도 불법 체포됐고, 협박과 회유에 못 이겨 자백했다고 다퉜다. 쟁점은 A씨에 대한 경찰의 체포영장 집행이 적법했는지였다.
앞서 법원은 2021년 1월 경찰이 A씨를 상대로 신청한 체포영장을 발부했고, 영장에 ‘수사기관의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을 우려가 있다’고 기재했다. 영장을 발부받은 경기북부경찰청은 한동안 이를 집행하지 않고 A씨에게 전화로 출석을 요구했다. A씨는 ‘지방에 있어서 어렵다’거나 ‘변호인과 상담 후 출석하겠다’고 답하다가, 같은 달 19일 오후 3시 경기북부경찰청 수사팀에 자진 출석하겠다고 했다.
경찰은 당일 잠복하다 경찰서 앞에 나타난 A씨를 체포했다. 경찰은 ‘같은 혐의로 2건의 형사처분을 받았고 다른 범행으로 징역형의 집행유예 기간에 있는 등 도주의 상당한 우려가 있다’는 보고서도 썼다.
1·2심은 A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 6개월과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하고, 1760만원의 추징을 명령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위법한 체포’라는 A씨 주장을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체포영장의 청구에서 발부·집행에 이르는 절차 전반에서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영장에 의한 체포의 사유와 그 필요성이 인정돼야 한다”는 법리를 재확인했다. 그러면서 “수사기관 청구에 따라 체포영장이 적법하게 발부된 경우라 해도 그 집행을 담당하는 검사·사법경찰관리는 체포영장을 집행하는 당시의 상황을 기초로 영장에 의한 체포 사유와 그 필요성이 충족됐는지 여부를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A씨의 범행이 은밀하게 이뤄졌고 동일 죄명의 형사처벌 전력이 있던 점을 들어 체포영장 청구와 발부는 적법하지만, 집행 과정은 위법했다고 판단했다. A씨가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 요구에 불응했다고 단정할 수 없고, 약속한 시간에 경찰청에 도착한 만큼 증거 인멸이나 도망 염려가 있다고 볼 언동도 없었다는 것이다.
경찰이 체포 후 작성한 보고서에도 체포영장을 집행해야 했던 이유나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근거에 대한 설명이나 기재가 없단 점도 들었다.
대법원은 “결국 경찰이 피고인에 대한 체포의 사유와 필요성이 충족됐다고 본 판단은 어느 모로 보나 경험칙에 비춰 현저히 합리성을 잃은 경우”라고 설명했다. 다만 “A씨의 진술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증거만으로도 범죄사실을 유죄로 인정함에 아무 장애가 되지 않는다”며 실형을 선고한 판결은 그대로 확정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