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바둑으로 읽는 이란전쟁의 파장

2026-05-08 13:00:02 게재

필자는 바둑을 둘 줄 모르지만 유명한 대국 결과 설명을 읽어보곤 한다. 가로 세로 19개 선으로 이루어진 바둑판은 외교무대와도 같다. 361개 점의 조합이 주는 선택은 무궁무진한 것 같지만 실제 택할 수 있는 방안은 상당히 제한되며 하나의 결정은 다른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외교와 비슷하다.

바둑판에서 벌어지는 일은 어디에서 발생하든 서로 영향을 미친다. 한번 돌을 놓으면 거둬들일 수 없다. 중동에서의 전쟁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유럽 관계, 세계 경제와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다. 일단 전쟁이 시작된 만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전쟁 전의 관계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많은 나라가 ‘미생’과 같은 느낌을 갖는다. 경쟁에서 뒤지면 안된다는 위기인식도 있지만 규칙 기반 국제질서가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불확실성 때문이기도 하다. 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소개한 대로 “강자는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약자는 당해야 할 일을 당한다”는 힘의 논리가 강요될 수 있음을 의식한다.

트럼프가 세계라는 바둑판에 던진 파장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고립주의를 취할 것으로 예상됐다.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는 먼로주의라는 고립주의를 계승한 ‘트럼프 독트린’을 표방했다. 미국의 관심은 중남미와 미국으로부터 멀지 않은 외국에 집중될 것 같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매파이지만 국방이 아니라 재정 측면에서 그렇기 때문에 많은 돈이 들어가는 전쟁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에 관한 예측은 다수가 빗나갔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라는 예측만 맞았다. 툭하면 나오는 관세위협과 주독 미군 감축, 나토(NATO) 동맹국 덴마크의 자치령 그린란드를 합병한다는 공언이 대표적이다.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한다는 발언이나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압송도 마찬가지다. 하루에 1조원이나 소요되는 이란전쟁이 계속될 것을 예측하기도 어려웠다.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그는 단기적으로 3개의 ‘가’를 중시한다. 물가·주가, 그리고 국내 지지그룹 마가(MAGA)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원유 생산국이자 원유 순수출국이지만 세계 원유가격 변동에서 자유롭지 않다. 세계 원유시장은 하나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북해 브렌트 원유 가격은 미국 국민이 매일 사용하는 휘발유 가격에 바로 연동되며 물가·주가·마가에 영향을 미친다.

원유가격 상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수행하기 쉽게 만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하루면 끝낼 수 있다고 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4년 3개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에는 16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의 우랄산 원유는 지난 2월 배럴당 45달러에 미치지 못했지만 3월 말 120달러를 넘는 등 높은 수준을 유지하며 러시아정부의 국방예산 운용을 돕고 있다.

격변의 축이라는 러시아·중국·이란·북한 간의 협력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도 관심사이다. 이란이 미국의 전투기를 격추하면서 중국제 무기가 사용되었다는 추측이 제기되었다. 중국은 즉각 이를 부인하며 선을 그었다. 당초 이란이 러시아에 공급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사용돼온 드론이 이번에는 미국과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데 활용되었다.

북한이 이란전쟁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지 주목된다. 북한은 이란·헤즈볼라·예멘 등을 지원한 경험이 있고 이란의 미사일 개발도 도운 바 있다. 북한·이란 핵 문제는 서로 영향을 미쳤다. 북한은 이란전쟁을 본 후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더 박차를 가할 것으로 우선 생각되지만 미국과의 대화에는 응해올지가 관심사이다.

이란전쟁에서는 또 다른 주목할 변화가 나타났다. 인공지능(AI)이 전쟁에 처음으로 통합돼 사용된 것이다. 미군은 목표 식별, 전술결정, 데이터 분석 등에서 AI를 사용해 작전의 효율을 대폭 높였다. AI에 기반을 둔 초고속 공격 방식은 무기체제 운용에 변화를 가져오고 전쟁 국제법에서도 새로운 윤리의 문제를 제기한다.

장기적 국익 기초한 동심원 외교 추진을

이창호 9단은 “바둑을 두면 인내해야 하는 상황이 많다. 반박하고 싶지만 약하기 때문에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는데 많은 나라를 대변하는 말이다. 또한 바둑에서는 돌의 배치도 중요하지만 순서도 중요하다. 똑같은 돌의 배치가 되더라도 순서를 잘못 선택하면 결과가 달라진다.

외교 정책도 순서가 중요하다. 이란전쟁의 여파가 한반도까지 미치는 지금, 한국은 한미동맹을 기축으로 하되 중국·일본·아세안 등과의 관계를 동시에 관리하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장기적인 국익에 기초한 동심원(同心圓) 외교를 추진해야 할 이유이다.

김형진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연구원, 전 주 벨기에유럽연합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