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 “담합 대기업, 사회적 책임 더 고민해야” 직격

2026-05-11 13:00:01 게재

설탕·전분당 등 국민식재료 담합한 씨제이 그룹에 강력경고

“반복하면 사업 매각 등 구조적 조치 가능하도록 제도보완”

“애크하이어 등 AI 빅테크의 편법 인력 가로채기 차단할 것”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국민생활과 직결된 식재료 시장에서 수십년간 담합을 반복해온 CJ제일제당 등 거대 기업을 향해 강력한 경고장을 날렸다. 공정거래위원장이 특정기업 이름을 언급하면서 불공정행위 경고를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주 위원장은 특히 “CJ 같은 큰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더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국민경제에 악영향을 주는 고질적 담합이 반복될 경우 해당 사업 부문을 강제로 매각하게 하는 ‘구조적 조치’ 도입도 공식화했다. 단순한 과징금 처분만으로는 거대 기업의 불법 고리를 끊어낼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최후통첩’으로 풀이된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7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ICN연차총회 출장기자단과 간담회를 갖고 질문에 응답하고 있다. 사진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국민식탁 농락한 CJ의 ‘담합 잔혹사’ = 주병기 위원장이 특정 기업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낸 배경에는 최근 적발된 CJ제일제당의 광범위한 담합과 불공정 행위가 자리 잡고 있다.

11일 공정위 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CJ제일제당은 설탕, 전분당, 밀가루 등 국민 식생활의 기초가 되는 원재료 시장에서 시장지배적 지위를 악용해 수십년간 가격을 담합해왔다. 설탕 시장의 경우, CJ제일제당을 포함한 이른바 ‘제당 3사’가 약 15년간 출고량과 가격을 조절하며 서민 물가 부담을 가중시켰다. 공정위는 지난 3월 CJ제일제당·삼양사·대한제당 등 제당사 3곳에 과징금 총 3960억원을 부과했다. 이들은 2007년 같은 혐의로 한 차례 제재를 받고도 다시 담합을 감행했다.

CJ는 또 음료와 과자의 필수 원료인 전분당과 밀가루 시장에서도 장기간에 걸친 가격 담합이 드러나 ‘과징금 폭탄’을 맞기도 했다.

CJ의 불공정 행위는 담합에만 그치지 않았다. 플랫폼 분야인 쿠팡과의 납품 단가 전쟁 과정에서 드러난 이른바 ‘햇반 전쟁’은 거대 제조사와 거대 유통사 간의 힘겨루기 속에서 소비자 선택권을 침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 계열사를 통한 부당 지원과 사익 편취 의혹도 끊이지 않고 제기돼 왔다.

주 위원장은 지난 7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설탕 담합은 악의적이며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며 “전사적으로, 심지어 (일부 사건은) 핵심 경영진 레벨까지 관여한 정황이 명확하고 이러한 행위가 반복된다면 이제는 영업 양도(사업 매각)와 같은 구조적 조치를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기업 쪼개서라도 독점 고리 끊는다 = 주 위원장이 이번 간담회에서 가장 역점을 둬 설명한 대목은 ‘구조적 조치의 도입’이다. 그동안 공정위는 기업의 법 위반에 대해 ‘하지 마라’는 행태적 시정명령이나 ‘돈으로 내라’는 과징금 부과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거대 기업들이 과징금을 일종의 ‘회피 비용’으로 치부하며 담합을 반복하자, 아예 독과점 구조 자체를 해체하는 물리적 수단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구조적 조치는 기업분할명령, 지분매각명령, 영업양도명령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특정 기업이 특정 사업 부문에서 반복적으로 담합을 저지른다면, 공정위가 해당 사업 부문을 떼어내 제3자에게 매각하라고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이다.

주 위원장은 “디지털 경제의 확산으로 네트워크 효과와 쏠림 현상이 강해지면서 1~2개 사업자가 시장을 독식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며 “사후적 과징금만으로는 독과점 구조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특히 미국(DOJ)이 구글의 크롬 브라우저 매각을 검토하고, EU가 구글 광고 사업부 인적 분할을 유일한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등 글로벌 경쟁당국의 패러다임이 ‘구조적 교정’으로 급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물론 이는 기업 경영권에 대한 강력한 개입인 만큼 ‘최후수단’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주 위원장은 “국민 경제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중대 위반이 반복되는 경우에 한정해 보충적으로 발동되도록 신중하게 설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법률에 명확히 규정하는 것만으로도 대기업 이사회가 경영자를 견제하게 만드는 강력한 예방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구조적 조치를 현실화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관련 법령 개정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공정위는 당장은 여론수렴을 통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에 주력하기로 했다.

◆핵심인재 빼가도 기업결합심사 = 주 위원장은 디지털 전환 시대의 새로운 독점 형태인 ‘인재 확보형 기업결합’에 대한 규제 방침도 상세히 밝혔다. 최근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스타트업을 통째로 인수하는 대신, 핵심 인재와 기술 라이선스만 쏙 빼가는 방식으로 기업결합 심사를 우회하는 사례가 빈번해졌기 때문이다.

이른바 ‘애크하이어(Acqui-hire)’는 인재(Acquisition)와 고용(Hire)의 합성어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인플렉션 AI의 인력을 대거 채용하며 사실상 회사를 흡수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주 위원장은 “핵심 인력의 조직적 이전이 사실상 영업 양수의 효과를 가진다면 이를 기업결합 심사 대상에 명확히 포함하겠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이를 위해 올 상반기 중 ‘기업결합의 신고요령’ 고시를 개정할 계획이다. 기존 주식 취득, 합병 등 5가지 전형적 유형 외에 ‘인력과 기술의 조직적 이동’을 심사대에 올리겠다는 것이다. 주 위원장은 “이를 통해 우리 벤처기업들이 대기업의 공격적인 인력 가로채기에 희생되지 않도록 보호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조치는 EU, 영국, 일본 등 선진국 경쟁당국들이 이미 시장조사에 착수한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주 위원장은 “주요국들이 동시에 도입을 고려하는 사안인 만큼 통상 마찰 우려는 크지 않다”며, 오히려 한국 경제의 역동성을 살리기 위한 필수 조치임을 분명히 했다.

주 위원장은 “경쟁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대기업은 독점 지위를 남용해 총수 일가의 사익만 극대화하고 혁신을 희생하게 된다”며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선 경제력 집중 해소와 소유지배구조 개선이 선결 과제”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번 마닐라 간담회는 공정위가 단순히 국내 규제 기관에 머물지 않고, 글로벌 경쟁법 집행의 중심축으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자리로 풀이된다. 특히 CJ와 같은 거대 기업을 향한 ‘사회적 책임’ 언급과 ‘구조적 조치’ 예고는 향후 공정위의 법 집행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강력한 수단을 동반할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읽힌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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