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계약 뒤 실제 일 안하면 임금 못받아”

2026-05-11 13:00:48 게재

1·2심, 근로계약만으로 임금청구권 인정

대법 “근로 제공해야 발생” … 파기 환송

회사와 근로자 사이에 근로계약을 체결했더라도 실제 근로하지 않으면 임금을 지급받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최근 익산 YMCA 사무총장으로 일했던 A씨가 전직 이사장 4명을 상대로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전주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10년 11월 익산 YMCA 전직 이사장 4명과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서에는 2010년 12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매월 기본급 250만원과 업무추진비 50만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단체는 2017년 8월까지 수련관 위탁운영 수익을 바탕으로 A씨에게 급여를 지급했지만, 그 이후는 운영이 중단되면서 급여 지급이 밀리기 시작했다.

A씨는 2020년 8월 이 단체 전직 이사장들을 상대로 “2017년 12월부터 33개월간의 임금 9900만원을 받지 못했다”며 1차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자 소송의 상대방(피고)인 전직 이사장 B씨는 2020년 12월 5일 A씨와 함께 ‘체불된 임금을 전액 지급한다’ ‘A씨는 민·형사상 법적인 것을 모두 취하한다’는 내용이 담긴 확약서를 작성했다. 해당 확약서에는 ‘이사장단은 A씨를 2021년 12월까지 재직하게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A씨는 확약서를 쓴 지 9일 만에 소를 취하했으나, 지급이 다 되지 않자 같은 달 28일 다시 B씨를 비롯한 전직 이사장들을 상대로 “확약서에 따른 8900만원을 달라”며 소송을 내 이듬해 8월 승소했다.

A씨는 2023년 5월, 또다시 B씨를 포함한 전직 이사장들을 상대로 임금을 달라는 이번 소송을 냈다.

맨 처음 맺은 근로계약서에 따르면 여전히 자신은 이 단체에 재직하고 있는 만큼, 앞선 소송에서 해결된 기간 이후인 2020년 9월부터 2023년 4월까지 32개월 치 임금 9600만원도 체불됐다는 주장이다.

1심은 A씨 손을 들어줬고, 2심 판단도 같았다. B씨 등은 2017년 8월 12일 이후부터는 조직이 와해돼 모든 활동과 업무가 중단됐기 때문에 A씨가 실제로 근로를 제공하지도 않아 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A씨가 실제로 근로를 제공했는지 관계없이 지급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A씨가 실제로 일을 했는지에 대한 판단 없이 근로계약 체결 사실만으로 임금청구권이 발생했다고 본 원심이 관련 법리를 오해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근로자의 임금청구권은 근로를 제공하면서 비로소 발생한다”며 “근로를 제공하지 않으면 임금청구권을 갖지 못한다”고 밝혔다.

A씨가 확약서를 작성하면서 근로계약 기간을 2021년 12월까지로 정한 점도 판단 근거로 언급했다.

대법원은 “근로계약은 확약서에서 정한 2021년 12월께 종료됐다고 볼 여지가 상당하다”며 A씨가 실제로 업무를 수행했는지, 계약 기간이 언제까지였는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보고 사건을 돌려보내 다시 심리하도록 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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