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왜곡죄 시행 두 달 ‘고발 폭증’
판사·검사·경찰 줄고발에도 송치 0건…현장에선 “수사·재판 위축” 우려
법왜곡죄 시행 두 달 만에 5800명 넘게 고발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현재까지 검찰 송치 사례는 한 건도 없는 것으로 집계됐다. 법조계와 경찰 내부에서는 제도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결과 불복성 고발이 급증하며 수사·재판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법왜곡죄 필요성과 별개로 무분별한 고발을 줄일 제도 보완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12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6일 기준 법왜곡죄 관련 접수 사건은 327건, 피고발인은 5805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244건은 현재 수사 중이며 78건은 불송치 결정됐다. 5건은 다른 기관으로 이송됐다. 현재까지 검찰 송치 사례는 없다.
피고발인 가운데 경찰은 1566명으로 전체의 27.0%를 차지했다. 이어 검사 376명(6.5%), 법관 242명(4.2%), 검찰수사관·특별사법경찰관 157명(2.7%) 순이었다.
특히 전체 피고발인의 약 60%인 3464명은 법왜곡죄 적용 대상이 아닌 일반 공무원이나 민간인 등인 것으로 나타났다. 법 적용 대상조차 구분되지 않은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법왜곡죄는 지난 3월 형법 개정으로 신설됐다. 형사재판 법관과 검사, 사법경찰관 등이 타인에게 위법·부당한 이익을 주거나 권익을 해할 목적으로 법 적용을 왜곡한 경우 10년 이하 징역과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한 규정이다. 수사기관과 법원의 자의적 권한 행사와 고의적 법 왜곡을 통제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도입됐다.
실제 법조계 안팎에서도 법왜곡죄 자체 필요성을 부정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수사기관과 법원이 막강한 권한을 가진 만큼 의도적 권한 남용에 대한 통제 장치 역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실제 처벌 여부와 별개로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특정 의도를 갖고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경계하게 만드는 기능은 필요하다”며 “이들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고 말했다.
다만 시행 초기부터 현장에서는 제도 취지와 실제 운용 사이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수사 결과나 재판 결과에 대한 불만이 법왜곡죄 고발로 이어지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왜곡죄 1호 고발은 조희대 대법원장 사건이었다. 이후 현직 판사와 검사, 경찰에 대한 고발도 잇따르고 있다. 최근에는 일반 공무원과 민간인까지 고발 대상에 포함되면서 사실상 광범위한 불복성 고발 수단처럼 활용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문제는 법왜곡죄 특성상 ‘고의성’ 입증 자체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단순 재량 판단과 고의적 법 왜곡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현재까지 송치 사례가 한 건도 없는 것도 이런 현실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찰 내부에서는 사건 부담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는 반응이다. 법왜곡죄 적용 대상이 아닌 경우에도 사건 접수 뒤 개별적으로 불송치 결정을 해야 하는 구조여서 업무 부담이 상당하다는 설명이다.
서울의 한 경찰 간부는 “기존에도 직무유기나 직권남용 고발은 있었지만 법왜곡죄 시행 이후 관련 고발이 크게 늘었다”며 “재판 기록이나 수사 절차 전반을 다시 검토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수사 부담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경찰청도 내부 부담을 의식하는 분위기다. 경찰청은 최근 일선에 법왜곡죄 구성요건과 수사 절차 관련 참고자료를 배포했다. 경찰수사심의위원회 활용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성주 국가수사본부장은 최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무분별한 고발은 조기에 정리해야 한다는 기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법원 내부에서는 형사재판 위축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형사재판부는 원래도 업무 강도와 사회적 부담이 큰 보직인데, 법왜곡죄 시행 이후 재판 결과 자체가 형사 고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부담까지 추가됐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사회적 관심이 큰 사건을 맡는 형사재판부의 경우 판결 이후 고발 가능성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반응도 나온다.
한 부장판사는 “형사재판은 원래도 부담이 큰 업무인데 법왜곡죄 시행 이후 심리적 압박이 더 커졌다는 이야기가 적지 않다”며 “결과에 불복하는 고발이 반복되면 형사재판부 기피 현상도 심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전국법원장 간담회에서도 형사법관 보호를 위한 위원회 신설과 예산 확충, 단계별 대응 매뉴얼 마련 필요성이 제기됐다. 기우종 차장은 간담회에서 “사법부는 법치주의의 최후 보루로서 재판 독립을 수호해야 한다”며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이라는 본연의 책무를 흔들림 없이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명예퇴직을 앞둔 판·검사들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현행 규정상 수사기관 조사나 수사 대상이 되면 명예퇴직수당 지급 제한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악성 고발이 사실상 ‘발목 잡기’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법왜곡죄의 필요성과 별개로 적용 기준을 보다 명확히 하고, 무분별한 고발을 걸러낼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불복성 고발이 반복될 경우 수사와 재판 자체가 방어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장세풍·김선일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