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시장 다음 충격은 휘발유·경유·항공유"

2026-05-13 13:00:13 게재

JP모건 원자재 보고서 분석

정유 병목에 가격압박 커져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파크의 셰브론 주유소에 갤런당 6달러를 넘는 휘발유 가격이 표시돼 있다. JP모건은 중동전쟁에 따른 원유시장의 다음 충격은 휘발유 등 최종 연료 가격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AFP=연합뉴스
국제 원유시장의 다음 충격은 원유 가격 자체가 아니라 휘발유·경유·항공유 같은 최종 연료 가격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원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 안팎에서 버티더라도 정유 제품 가격은 더 빠르게 오르며 소비자와 기업에 직접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JP모건의 원자재 전문가 나타샤 카네바는 최근 보고서에서 에너지 시장의 조정이 “원유에서 정유 제품으로 내려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쟁 이후 원유 공급 차질이 커졌지만 브렌트유 가격은 두달 동안 평균 100달러 수준에 머물렀다. JP모건은 원유 시장만으로는 충격을 흡수할 여지가 부족해 병목이 정유와 최종 연료 시장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봤다.

이미 아시아와 유럽 정유업체들은 원유 부족으로 가동률을 낮추고 있다. JP모건은 3월 아시아와 유럽 정유 가동이 하루 210만배럴, 4월에는 하루 380만배럴 줄었다고 추정했다. 여기에 중동 지역의 정유 제품 수출도 하루 470만배럴가량 사라졌다. 원유뿐 아니라 휘발유, 경유, 항공유, 액화석유가스(LPG), 나프타 같은 실제 사용 가능한 연료 공급이 함께 빠듯해진 것이다.

가격 반응은 더 뚜렷하다. 1월부터 4월까지 원유 가격은 약 40% 올랐지만 타격이 컸던 아시아 지역 정유 제품 가격은 60~120% 상승했다. JP모건은 소비자가 원유를 사는 것이 아니라 연료를 산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유가가 안정돼 보이더라도 주유소와 항공료, 물류비에서는 더 큰 충격이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국영 석유기업 사우디아람코의 아민 나세르 최고경영자(CEO)는 11일(현지시간) 실적 발표 후 휘발유와 항공유 재고 감소가 빠르게 가속하고 있다며, 여름철을 앞두고 재고가 “위태롭게 낮은 수준”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장 먼저 압박을 받는 품목은 항공유다. 항공유 가격은 아시아, 유럽, 미국에서 거의 두 배로 뛰었고, 항공유 정제마진은 원유 가격보다 배럴당 80~100달러 높아졌다. 정제마진은 원유를 사서 휘발유·경유·항공유로 바꿨을 때 남는 차이를 뜻한다. 지금 시장은 정유사들에 항공유 생산을 늘리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정유 공장이 원하는 만큼 특정 연료만 만들 수 없다는 데 있다. 원유 한 배럴은 휘발유, 나프타, 항공유, 경유, 중유 등으로 나뉜다. 항공유는 보통 정유 제품 가운데 8~15%를 차지하고, 경유는 25~35% 수준이다. 두 연료는 같은 원료 구간을 놓고 경쟁하기 때문에 항공유 생산을 늘리면 경유 공급이 줄어드는 구조다.

JP모건은 대부분 정유사가 항공유와 경유 사이에서 조정할 수 있는 폭이 전체 생산량의 2~5% 정도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항공유를 더 만드는 결정은 거의 항상 경유 공급 감소를 동반한다. 경유는 화물 운송과 산업 활동의 핵심 연료인 만큼 공급이 조금만 줄어도 운송비와 생산비에 파급될 수 있다.

미국에서도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4.56달러에 이르렀고, 5달러 휘발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워졌다. 미국 정유사들은 항공유 정제마진 급등에 대응해 항공유 생산 비중을 약 2% 높였고, 항공유 재고를 다시 쌓았으며 수출도 사상 최고 수준으로 늘렸다.

그러나 그 대가로 휘발유 생산은 줄었다. 미국의 휘발유 생산 비중은 2% 낮아졌고, 생산량은 전년보다 하루 34만배럴 감소했다. 반면 수요는 늘어날 전망이다. 5월 말 메모리얼데이를 기점으로 여름철 자동차 이동 수요가 본격화된다.

JP모건의 분석대로라면 에너지 충격의 다음 단계는 원유 급등이 아니라 정유 병목과 최종 연료 부족이다. 겉으로 보이는 유가는 100달러 부근에서 안정돼도, 소비자들이 실제로 사는 휘발유·경유·항공유 가격은 더 큰 폭으로 오를 수 있다. 에너지 충격의 중심이 유전에서 정유소와 주유소, 공항과 물류망으로 이동하고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양현승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