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방소멸 해법, 교육이 근본 처방
금요일 저녁, 전국 혁신도시 터미널과 기차역은 서울행 인파로 붐빈다. 이른바 ‘금요일의 탈출’이다. 공공기관 이전으로 직장은 지방으로 옮겼지만 자녀를 맡길 학교와 대학 인프라에 확신이 없으니 가족은 수도권에 두고 홀로 내려온 이들이 주말마다 집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이 장면 하나가 지방 소멸의 본질을 압축해 보여 준다.
수치는 냉혹하다. 수도권 국토 면적은 전체의 11.8%에 불과하지만 인구는 51%가 집중돼 있다. 비수도권은 국토의 88.2%를 차지하면서 인구는 49%에 그친다. 매년 16만명의 청년이 수도권으로 유입된다. 역설적인 것은 전남의 출산율이 세종시와 함께 전국 최상위권임에도 지방 소멸 위험 지역 1위라는 사실이다. 아이를 낳아도 키울 환경이 없으니 결국 떠나는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수십년간 ‘기업 유치’와 ‘지방공단 조성’을 만병통치약처럼 처방해 왔다. 넓은 부지를 닦고 파격적인 세제 혜택으로 공장을 끌어왔지만 정작 그 공장에서 일할 사람들은 지역에 뿌리내리지 않았다. 혁신도시의 정주율은 70%를 웃도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족 동반 이주율’을 따져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돈 벌 곳’은 생겼으나 ‘아이 키울 곳’은 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교육으로 부활한 핀란드·스웨덴의 교훈
해외의 성공한 지역 소생 모델은 다르다. 핀란드 오울루(Oulu)는 노키아 몰락 이후 오울루대학을 중심으로 지역 산업을 재편했다. 대학이 기업이 필요한 인재를 즉각 공급하고 초·중·고 과정부터 디지털 역량을 키우는 구조를 만들자 기업들은 떠나지 않았다. 스웨덴 웁살라(Uppsala)의 바이오 클러스터는 대학 연구 성과가 지역 기업으로 흐르고, 그 기업에서 성장한 인재가 다시 지역 교육에 기여하는 선순환을 보여 준다. 이들에게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 아니라 지역과 기업을 연결하는 플랫폼이다.
답은 분명하다. ‘떠나지 말라’고 붙잡는 것이 아니라 ‘떠날 이유가 사라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그 핵심은 유치원·초·중·고·대학·기업으로 이어지는 촘촘한 교육 연결 고리다.
첫째, 지역 특화 교육이 필요하다. 수도권을 따라가는 교육이 아니라 지방만의 교육을 특화해야 한다. 지역 산업과 연계된 인공지능(AI)·디지털 융합 교육을 통해 지역 아이들이 그 땅에서 나고 자라 지역 기업에 기여할 역량을 키워 주어야 한다.
둘째, 대학이 상아탑에서 내려와야 한다. 대학은 지역 산업의 연구개발(R&D) 센터이자 인재 공급 거점이 되어야 한다. 글로컬(지역혁신) 대학 사업처럼 지자체·대학·산업체가 한 몸으로 움직이는 모델, 그리고 나열식이 아닌 ‘그 대학만의 일류’를 만드는 브랜드 전략이 필수다.
셋째, 기업이 지역 교육의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을 교육 과정에 반영하고 지방 대기업은 지방대학과 계약학과를 맺어 인재 양성을 주도해야 한다. 지방대학의 수준이 낮아서가 아니라 수준을 높이는데 함께 투자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넷째, 연구와 산업이 지방으로 와야 한다. 서울의 AI 연구소가 전기요금이 높은 도심에 있을 이유가 없다. 나주 에너지밸리에 연구소를 짓고 관련 전공이 협업하는 구조, 그것이 지역 대학을 살리는 실질적인 방법이다.
떠날 이유 사라지는 구조 만들어야
교육이 살아나면 일자리가 생긴다. 일자리가 생기면 복지가 따라온다. 교육-일자리-복지의 선순환 구조, 이것이 지방 소멸에 맞서는 가장 확실한 근본 처방이다. 지방공단을 채우는 기계 소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역 학교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이며, 대학 강의실에서 피어나는 혁신의 열기다.
이제 정책의 패러다임을 ‘산업 우선’에서 ‘교육 필연’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 실험의 장으로 7월 출범하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가 주목된다. 완전한 교육 자치를 기반으로 한 이 통합체가 대한민국 지방 소멸에 맞선 가장 강력한 반격 모델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 전환의 성패는 중앙정부가 교육 자치를 얼마나 과감하게 지방에 이양하느냐에 달려 있다. 공장 부지를 닦는 삽 대신 교실의 질을 높이는 정책에 예산을 쏟을 때 지방 소멸의 시계는 비로소 멈출 것이다.
문승태
국립순천대
전 대외협력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