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칼럼
피지컬 AI 시대, 로봇 태권V를 기다리며
과거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한 첫 기억은 만화적 상상력이었다. 일본의 마징가Z에 맞선 한국의 태권V는 기계 영웅의 이미지였고, “국가위기 시 KIST 본관 옆 연못이 열리고, 태권V가 출격한다”는 설화 같은 유머는 기술이 곧 국력이라는 믿음의 표현이었다. 이제 그 시절의 막연한 동경과 상상은 ‘피지컬 AI(Physical AI)’란 실체적 기술이 되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다.
2025년 CES에서 젠슨 황이 선언했듯 생성형 AI 이후는 현실세계에서 작동하는 로봇의 시대다. 당시 무대에 등장했던 휴머노이드 14대 중 6대가 중국산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제로 2024년 이후 소개된 휴머노이드의 70%가 중국산일 정도로 로봇기술의 중심축이 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 2025년 베이징 하프 마라톤에 처음 출전했던 로봇들이 불과 1년 후 인간의 기록을 추월하고, 춘절 행사에서 어린이들과 정교한 대련을 하는 모습은 기술발전의 가속도를 증명한다.
중국의 로봇산업은 이제 거리나 쇼핑몰 등 실생활공간에서 현실 데이터를 축적하며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특히 저가형 부품 생태계를 기반으로 조기 상용화를 달성하고, 이를 다시 기술 고도화로 연결하는 중국 내 선순환 구조는 파괴적 혁신을 지향한다. 25세에 창업해 10년 만에 10조원대 기업가치로 평가받는 왕싱싱의 유니트리 성장은 로봇산업 판도 변화를 상징하는 사례다. 젊은 창업가들의 도전과 정부·자본의 결합은 전혀 다른 경쟁양상을 만들어내며 세계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데이터 양과 질, 소부장에서 승부 갈려
1950년대 ‘우주소년 아톰’으로 상징되는 로봇 선진국 일본은 2000년 세계 최초 2족 보행 휴머노이드 로봇 아시모를 선보이며 기술 정점에 섰다. 그러나 일본은 기술적 완성도라는 외골수적 집착에 매몰돼 연구실 내 시연에만 머무는 과오를 범했다.
이러한 폐쇄적 생태계와 상용화 모델의 부재는 시장 확장성을 저해했고, 결국 유연한 플랫폼 중심의 미국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에 주도권을 내주었다. 이는 원천기술이 비즈니스 생태계로 전이되지 못할 때 발생하는 기술의 고립화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두뇌인 AI와 인간 형상의 신체가 결합된 ‘체화된 AI(Embodied AI)’다. 결국 승부는 데이터의 양과 질, 그리고 이를 물리적으로 구현할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경쟁력에서 갈린다. 관절과 근육 역할을 하는 액추에이터와 감속기, 심장인 배터리와 몸을 이루는 소재가 그 경쟁력의 핵심요소다.
로봇원가의 약 50%를 차지하는 액추에이터는 하드웨어 정밀도를 좌우하는 모듈이다. 특히 고가의 정밀감속기는 국산화와 양산공정 혁신을 통해 중국의 저가공세에 대응해야 한다. 배터리 기술 역시 로봇의 활동 반경과 지속가능성을 결정짓는 핵심부품이다. 배터리 무게는 관절부하와 직결되므로, 기존 리튬이온의 한계를 넘는 고에너지 밀도의 차세대 이차전지 확보가 필수적이다.
소재 경량화도 병행돼야 한다. 탄소섬유 강화 플라스틱(CFRP) 등 신소재를 적용해 관성을 최소화하면 제어 응답성이 높아지고 모터와 배터리의 부하를 낮출 수 있다. 이러한 소부장 하드웨어의 혁신은 피지컬 AI가 일상에 안착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통과할 관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기반과 정밀가공 기술을 갖춘 한국의 로봇산업 잠재력은 매우 크다. 최근 감속기 등 핵심부품의 국산화를 이루고, 배터리 역량과 반도체와 자동차 산업에서 축적한 양산 노하우는 강력한 경쟁 우위 요건이다. 다만, 일부 품목의 외국 의존도는 여전히 높다. 아울러 보스턴다이내믹스 등 해외 유망 기업 인수에도 불구하고, 로보락으로 대표되는 가정용 로봇시장은 이미 중국 브랜드에 주도권을 내주고 있다. 단순 가전을 넘어 공간 데이터 플랫폼으로서 외국 기업이 가정 내 점유율을 확장하는 현상은 심각한 대목이다. 소비시장의 잠식에 그치지 않고, 기본적인 일상 데이터까지 위협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산업화까지 전주기 생태계 구축
과거 21세기 및 글로벌 프론티어 사업 이후 약화된, 정부 정책의 공백은 우리 로봇산업 발전에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제 로봇은 단순한 미래 먹거리를 넘어 제조업 강국의 위상을 결정지을 국가적 전략 분야가 되었다. 해법은 원천기술부터 산업화까지 단절 없는 전주기 생태계 구축에 있다.
도전적인 고위험 영역은 대학과 출연연 중심의 문샷형 프로젝트로 돌파하고, 기업의 제조업 밸류체인을 세계적인 ICT·AI 인프라와 결합한 ‘태권V 플랫폼’ 전략을 펼쳐야 한다. 이러한 유기적 협업만이 로봇 분야의 재도약을 이끌 성장동력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AI라는 두뇌, 소부장이라는 신체, 배터리라는 심장이 산업 생태계로 연결될 때 완성된다. 피지컬 AI 시대의 개막과 함께 로봇 태권V 탄생 50년을 맞은 지금 우리는 여전히 꿈만 꿀 것인가, 아니면 현실로 이를 구현시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