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 불똥에 일본 국민과자도 ‘무채색’

2026-05-15 13:00:02 게재

칼비, 감자칩 포장 흑백으로

나프타 수급 차질에 잉크 부족

중동 전쟁의 여파가 일본 소비자들의 가장 익숙한 과자 봉지 색깔까지 바꾸고 있다. 국제 유가 급등과 원자재 공급난이 이어지면서 일본 대표 스낵업체 칼비(Calbee)가 자사 주요 제품의 화려한 컬러 포장을 흑백으로 일시 전환하기로 했다.

전쟁이 촉발한 공급망 충격이 군사·외교 영역을 넘어 식품 포장재 같은 일상 소비재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평가된다.

뉴욕타임스(NYT)는 12일(현지시간) 칼비가 인쇄 잉크 원료인 나프타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일부 제품 포장을 회색조로 바꾸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칼비는 이날 성명을 통해 “제품의 안정적인 공급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라며 “포장 디자인만 달라질 뿐 맛과 품질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이달부터 순차적으로 시행되며 총 14개 제품이 대상이다. 일본 소비자에게 칼비 제품은 포장 색깔만으로도 맛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친숙하다. 밝은 노란색, 초록색, 붉은색 등 각기 다른 디자인은 브랜드 정체성의 핵심 요소로 여겨져 왔다.

칼비 대변인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포장용 인쇄 잉크 제조에 필요한 나프타 확보가 어려워졌다”며 “컬러 인쇄에 필요한 원료를 절약하기 위해 흑백 포장으로 전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나프타는 원유 정제 과정에서 얻어지는 석유화학 기초 원료로 플라스틱, 합성수지, 포장재, 인쇄 잉크, 페인트, 접착제 등 다양한 산업 제품의 핵심 소재다. 컬러 인쇄에는 여러 안료와 용제가 필요해 단색 또는 흑백 인쇄보다 더 많은 원료가 투입된다.

일본 경제산업성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원유 수입 가운데 90% 이상이 중동산이며, 나프타 수입의 약 40%도 중동에 의존한다. 중동전쟁이 장기화하면 에너지뿐 아니라 석유화학 전반의 공급망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근 일본 제조업체들은 잇따라 원자재 수급난을 호소하고 있다. 식품업체들은 두부 용기와 찻잎 포장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자동차·욕실용품·도료 업계도 플라스틱 및 화학 소재 조달에 부담이 커졌다고 전하고 있다.

포장재 비용 상승은 기업들의 생산 전략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일부 업체는 생산량을 줄이거나 포장 디자인을 단순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일본 정부는 시장 불안을 진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사토 케이 관방부 부장관은 이날 도쿄 기자회견에서 “현재까지 인쇄 잉크나 나프타 공급이 즉각적으로 중단됐다는 보고는 없다”며 “일본 전체적으로 필요한 물량은 확보된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관련 기업들과 긴밀히 소통하며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1949년 설립된 칼비는 일본을 대표하는 식품기업으로 스낵 시장 전체의 약 절반, 감자칩 시장의 약 70%를 차지하는 압도적 1위 업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정재철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