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성폭력’ 46년 동안 치유되지 않은 아픔

2026-05-15 13:00:01 게재

1980년 5월 계엄군 성폭력 자행

5.18조사위, 19건 진상규명 결정

피해증언자 모임 ‘5.18열매’ 결성

1980년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해 46년 동안 온전히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 진실이 있다. 5.18 당시 계엄군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2026년 2월 28일 오후 2시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회원 등 150여명이 모여 ‘5.18열매’ 창립총회를 열었다. 사진 5.18 열매 제공

15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직권사건 조사보고서(2023년) 등에 따르면 계엄군에 의한 성폭력 사건은 1980년 5월 18일 광주를 고립시키기 위한 외곽 봉쇄 작전부터 도심 시위 진압 과정, 광주 재진입 작전이 이뤄졌던 5월 27일까지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도심 시위 진압 작전’ 과정에서 발생한 성폭력은 모두 10건으로 가장 빈번했다. 피해자들은 계엄군에게 붙잡혀 광주 인근 야산이나 저수지 등에서 성폭력을 당했다. 업무용 차량 안에서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도 여럿 있었다. 피해자 가운데 임산부도 있었고, 집단 성폭행을 당한 여성도 있는 등 계엄군에 의한 성폭력은 광주 도심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외곽 봉쇄 작전 중 성폭력은 3건 모두 광주 인근 야산에서 발생했다. 광주 재진입 작전과 연행·구금·조사 과정에서 발생한 성폭력도 6건이나 됐다. 성폭력 이후 피해자 대부분은 악몽 같은 삶을 살았다. 잦은 자살 시도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고, 정신질환을 앓다가 생을 마감하거나 지금까지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힘겹게 투병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그동안 이들의 고통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2018년 9월 14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되고 2023년 12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보고서를 통해 일부 실상이 드러났다. 하지만 여전히 정확한 규모나 인원은 베일에 가려진 상태다. 2018년 피해자 김선옥씨의 인터뷰를 계기로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공동조사단의 활동기간은 5개월이 채 되지 않았고, 법적권한에도 한계가 있어 피해 실상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이후 2020년 ‘5.18조사위’가 공동조사단의 자료를 인계받아 성폭력 사건에 관한 조사를 개시했고, 2021년 ‘성폭력’을 조사 범위에 포함하는 법 조항이 신설되면서 본격적인 조사가 이뤄졌다.

‘5.18조사위’는 2024년 6월 종합 보고서를 제출하기까지 5년간 정황 증거와 자료를 바탕으로 피해 의혹이 있는 52건 가운데 16건에 대해 ‘진상규명’ 결정을 내렸다. 이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벌어진 성폭력 사건에 대해 국가기관이 인정한 첫 사례가 됐다. 당시 조사위는 “성폭력 피해가 계엄군의 조직적인 작전에서 야기된 국가폭력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나머지 36건 중 33건은 여전히 규명되지 않은 진실로 남았다. 일부 성폭력 피해자와 가족은 오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여서 침묵을 택했다. 사건 이후 사망·자살·정신병 발병 등으로 당사자의 진술을 청취하지 못한 사건도 있었다. 이들의 침묵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다. 김복희 ‘5.18열매’ 대표는 “저희에게 저지른 성폭력 피해는 치유되지 못한 채 세월 속에 누적됐다”고 말했다.

긴 시간 침묵을 택했던 피해자들은 스스로 역사의 증언자가 됐다. 5.18 성폭력 피해를 규명하기 위해 2024년 8월 29일 17명의 피해자와 가족들이 모여 ‘5.18열매’를 꾸렸다.

그리고 2026년 2월 ‘과거사 젠더 폭력 진실과 치유의 길을 여는 공적 단체’로 공식 출범했다. 40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떠올리기 싫었던 상처를 가까스로 꺼내며 치유하는 과정에 있는 셈이다.

‘5.18열매’ 회원들은 현재 국가의 책임을 요구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46주기를 사흘 앞둔 15일 3차 공판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다.

김복희 대표는 “국가가 국민의 존엄을 두고 그 책임을 어떻게 규명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역사적 선례”라며 “우리 세대의 고통을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다음 세대에게는 국가 폭력이 용납되지 않는 정의로운 사회라는 신뢰를 남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가장 시급한 일은 지난해 12월 2일 국회를 통과한 ‘5.18 보상법 개정안’에 맞게 시행령을 개정하는 일이다. 지난해 12월 2일 성폭력 피해자를 지급규정에 포함시켜 실질적 보상을 받을수 있도록 한 ‘5.18보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동안 5.18보상법은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관련자 또는 유족을 ‘사망자·행방불명자·상이자’로 한정했었다.

윤경회 ‘5.18열매’ 간사는 “5.18 성폭력 피해자를 지급규정에 명시해 실질적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법안은 개정됐지만, 구체적인 보상기준 등을 명시한 시행령 마련이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이와 함께 △‘5.18조사위’의 권고사항 이행 △미규명 피해자 조사기구 설치 △국가의 공식 사과 등을 요구하고 있다.

홍범택 기자 durumi@naeil.com

홍범택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