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란전쟁과 ‘팍스아메리카나’의 종언
달러패권·동맹체계·글로벌공급망 잇는 미 패권 ‘흔들’ … 쇠퇴기 제국들, 군사적 무리수로 자멸
정녕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인류 역사를 되돌아보면 역대 제국들은 쇠망의 문턱에서 놀라울 만큼 유사한 무리수를 두었다. 재정은 고갈되고, 국론은 분열되고, 신흥세력이 발호하는 상황에서도 제국은 군사행동으로 그 위엄을 보여주려 했다. 그러나 기울어가는 제국의 군사적 모험은 스스로의 몰락을 재촉했을 뿐이었다. 지난 2500여년 동안 아테네와 로마,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 등 뭇 제국들이 역사의 반복을 입증했다.
기원전 413년, 에게해의 패자였던 아테네는 대규모 함대를 지중해 시칠리아로 출동시켰다. 시칠리아를 정복한 다음 이를 발판으로 카르타고까지 굴복시킴으로써 지중해 전체를 손아귀에 넣는다는 야심이었다. 그러나 시칠리아는 멀었고 보급선은 길었다. 시칠리아의 중심이었던 시라쿠사는 스파르타의 지원을 받아 끝까지 버텼고, 결국 아테네 원정군을 괴멸시켰다. 시칠리아 원정 실패 이후 아테네는 채 10년도 버티지 못한 채 기원전 404년 스파르타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다.
서로마제국 역시 쇠퇴기에 무리한 군사 원정으로 남은 국력을 소진했다. 당시 서로마는 밖으로는 반달족과 훈족, 서고트족, 프랑크족의 침공에 시달렸고, 안으로는 권력암투와 재정악화를 겪고 있었다. 서기 468년 서로마는 지중해 패권을 되찾기 위해 북아프리카 반달왕국 정복전쟁에 나섰다. 동로마 지원부대까지 대규모로 가세한 로마 연합군이었다.
로마 연합군은 그러나 참패를 당하고 만다. 시칠리아와 트리폴리와 사르디니아까지 반달족에게 내주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결국 서로마는 전쟁 후 8년 만인 476년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다.
16세기 대항해시대 이후 20세기 중반까지 포르투갈과 스페인, 그리고 영국은 차례로 세계 해양패권을 누렸다. 그러나 이들 제국은 하나같이 쇠락기에 국력을 넘어선 군사적 모험에 뛰어들었다. 힘이 기울기 시작한 제국의 과시적 군사행동은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었다.
이란전쟁은 21세기판 시칠리아 원정
21세기에도 역사는 반복된다. 지난 80여 년간 미국은 군사·경제·기술패권을 바탕으로 세계질서를 이끌어왔다. 그러나 미국 역시 역대 제국들의 쇠퇴기 징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매디슨 캠퍼스의 석좌교수인 알프레드 W. 맥코이는 최근 ‘이란전쟁과 미 제국의 종말(The Iran War and the End of the American Empire)’이라는 칼럼을 오피니언 플랫폼인 ‘톰디스패치(TomDispatch)’에 실었다. 맥코이 교수는 미국이 벌이고 있는 이란전쟁을 아테네의 시칠리아 원정에 비유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인 플루타르코스는 오늘날 학자들이 ‘미시적 군사주의(micro-militarism)’라고 부르는 현상에 대해 설득력 있는 설명을 남겼다. 당시의 아테네는 오늘날의 미국처럼 쇠퇴하고 있는 제국이었다. 아테네의 지도자들은 제국의 위엄을 되찾으려는 희망으로 겉보기에는 대담한 군사 공격을 벌이고는 했다. 그러나 제국의 전성기에 거두었던 위대한 승리와는 달리 그러한 군사적 모험은 진행 중인 쇠퇴를 가속화했을 뿐이었다. 그나마 남아 있던 제국적 위엄의 아우라마저 지워버리고 말았다.”
2026년 2월 28일을 기억하라! 맥코이 교수는 이란전쟁이 시작된 이 날이 미 제국 쇠퇴의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란전쟁이야말로 지난 2500년 동안 여러 제국을 무너뜨리는 데 기여했던 ‘미시적 군사 재앙’을 닮았다면서 다음과 같이 전망했다.
“미국의 사실상 패배가 세계패권에 미칠 영향은 너무나도 분명해지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같은 군사동맹은 쇠퇴하고, 미국의 패권은 사라지고, 세계질서는 혼란해지고, 세계경제는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패권이 흔들리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여년 동안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이란에서 잇달아 군사적 수렁에 빠져들었다. 아프간전쟁은 20년 전쟁 끝에 탈레반 재집권이라는 결과로 막을 내렸다. 이라크전쟁은 막대한 전비를 쓰고도 중동 불안정만 남겼다. 이젠 이란전쟁까지 진퇴양난의 수렁으로 변하고 있다.
미국이 물러나는 자리를 중국이 차근차근 메우고 있다. 중국은 인공지능(AI)과 전기차 배터리 우주개발 첨단무기 등 여러 분야에서 급속히 미국을 추격하거나 이미 추월하고 있다. 육·해상 실크로드인 일대일로(一帶一路)를 필두로 브릭스(BRICS)와 상하이협력기구(SCO) 등을 통해 미국에 맞서는 경제·외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맥코이 교수는 “1956년 수에즈에서의 영국처럼 미국 역시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미시적 군사주의로 인해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동맹은 산산이 부서지고, 세계 지도력은 상실되고, 군사력에 대한 위신도 사라져가고 있다. 이제 미국의 패권은 과거의 수많은 강대국들처럼 하향 곡선만을 그릴 가능성이 크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벌인 트럼프의 미시적 군사모험이 끝날 무렵 미국의 세계패권은 급격히 쇠퇴할 것이다. 세계는 ‘팍스 아메리카나’를 넘어 새로운 세계질서를 향해 나아가려 할 것이다.”
미국의 경제패권 기반 흔들려
이란전쟁은 미국의 경제패권 기반까지 흔들고 있다. 이란전쟁의 장기화로 달러패권과 동맹체계, 글로벌 공급망으로 이어지는 미국 중심 경제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경제안보 책임자인 나빈 기리샨카르(Navin Girishankar)는 최근 ‘이란의 진짜 전쟁 상대는 세계경제다’라는 칼럼을 CSIS 홈페이지에 올렸다. 기리샨카르는 칼럼을 통해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과 싸우고 있지만 이란은 세계경제와 싸우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에너지 인프라 공격을 통해 미국 중심의 세계경제 시스템을 흔들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기리샨카르는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은 걸프지역 경제 인프라 전반을 타격하고 있다”면서 “이것은 무차별적 보복 공격이 아니라 미국과 걸프 지역 동맹국들, 그리고 세계경제 전체가 이 전쟁을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없게 만들려는 의도적인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이란전쟁은 미국의 동맹 네트워크도 통째로 흔들고 있다. 기리샨카르는 이란전쟁의 충격이 미국의 가장 핵심적인 동맹국들로 연쇄적으로 번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세계 최첨단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축인 일본과 한국은 석유와 주요 자원의 80%를 걸프지역에 의존하고 있다”면서 “카타르가 공급을 중단하면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헬륨 부족 사태를 겪었다”고 전했다.
팍스아메리카나 균열 상징하는 사건
‘미 제국의 쇠퇴’ 혹은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언’ 이란 말이 나온지는 오래다. 그러나 이란전쟁 전후로 그 빈도가 부쩍 늘었다. 미국 언론인 크리스토퍼 콜드웰은 지난 3일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공식적으로 쇠퇴에 접어든 미 제국(America Is Officially an Empire in Decline)’이라는 칼럼을 통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은 단순히 잘못된 선택을 넘어서서 미국 제국 쇠퇴의 분수령으로 전환되었다”고 주장했다.
매사추세츠대학교 애머스트 캠퍼스의 명예 경제학 교수인 리처드 D. 울프는 지난 2월 26일 국제정치·외교·안보·경제 전문 매체인 유라시아 리뷰에 ‘쇠퇴하는 제국과 경제(An Empire And Economy In Decline)’라는 칼럼에서 “제국의 쇠퇴는 지속되고 있으며, 그런 쇠퇴는 미국 경제 전체로 확장되는 현상도 계속된다”라고 썼다. 울프 교수는 “제국의 쇠퇴는 이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경제·정치·문화정책들에 의해 더욱 가속되면서 객관적 조건을 성숙시키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마지막 지푸라기 하나가 낙타의 등을 부러트린다는 서양 속담이 있다. 아테네의 시칠리아 원정이 에게해 패권의 몰락을 불렀고, 서로마의 반달왕국 정복전쟁이 제국의 최후를 재촉했듯, 이란전쟁 역시 훗날 ‘팍스 아메리카나’의 균열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영원한 제국은 없다.
지구촌 순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