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근금지만으론 못 막는 관계성 범죄

2026-05-18 13:00:12 게재

경찰·상담기관, 스토킹·교제폭력 피해자 5만명 공동 관리 … 심리치료·재발 방지 함께 지원

정부가 스토킹·교제폭력·가정폭력 등 관계성 범죄 피해자 보호 강화를 위해 경찰과 상담기관이 함께 대응하는 공동관리 체계를 구축했다. 관계성 범죄는 가족·연인·지인 등 친밀 관계를 기반으로 발생하는 폭력 범죄를 뜻한다. 정부는 피해 위험도에 따라 경찰과 상담기관 역할을 나눠 안전조치와 심리 회복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경찰청과 성평등가족부는 18일부터 관계성 범죄 공동대응체계를 운영한다고 17일 밝혔다. 전국 261개 경찰서와 여성긴급전화 1366, 가정폭력 상담소 등 전국 상담기관 189곳이 연계해 피해자 보호와 사후 관리를 공동으로 맡는다.

관리 대상은 지난 15일 기준 총 4만9906명이다. 이 가운데 고위험군인 A등급 피해자는 2만1423명,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낮은 B등급 피해자는 2만8483명이다.

공동대응체계에서는 임시조치·잠정조치 결정 사건 등 고위험 피해자를 경찰이 직접 관리한다. 피해자 안전 확보와 재발 방지 중심으로 집중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위험 상황 발생 시 즉각 보호조치에 나선다.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낮은 피해자는 상담기관이 정기 상담과 심리치료를 맡는다. 상담 과정에서 추가 위험성이 발견되면 경찰에 즉시 통보해 재조사와 안전조치가 이뤄지도록 할 계획이다.

신고 접수 단계부터 피해자보호경찰관과 전문상담사가 함께 대응하는 방식도 도입된다. 피해자 위험도에 따라 보호와 상담을 동시에 연계해 초기 대응 공백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폭력 피해와 함께 의료·생계·심리 문제까지 겹친 피해자에 대해서는 경찰서 주관 ‘범죄피해자 통합지원 협의체’를 통해 별도 지원 체계도 운영하기로 했다. 상담소와 지방자치단체, 의료기관, 법률 전문가 등이 참여해 맞춤형 지원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번 대응체계는 관계성 범죄 증가와 함께 피해 양상이 복잡해지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마련됐다. 경찰은 관계성 범죄가 친밀 관계를 기반으로 반복·은폐되기 쉬운 특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2016년부터 피해자 위험도별 사후 모니터링을 실시해 왔지만 최근에는 트라우마와 심리적 고립감을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일부 피해자는 경찰 개입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면서 단속 중심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스토킹과 교제폭력 사건이 반복 신고와 접근금지 조치 이후에도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피해자 사후 관리 체계 강화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최근 남양주 스토킹 살인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위치추적 의심 장치를 발견해 여러 차례 신고했고 접근금지 조치도 내려졌지만 범행을 막지 못하면서 보호 체계 실효성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해 수도권에서는 접근금지 명령 종료 일주일 만에 가해자가 피해자를 찾아가 살해한 사건도 발생했다. 접근금지 기간 종료 이후 발생하는 ‘보호 공백’ 문제가 반복적으로 지적되는 이유다.

지난 3월 17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남양주 가정폭력ㆍ스토킹 여성살해사건 긴급대응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전문가들은 관계성 범죄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생활권과 일상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재범 위험이 높다고 지적한다. 전자발찌와 접근금지 조치가 내려졌음에도 강력범죄로 이어진 사례가 반복되면서 단순 접근금지 중심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관계성 범죄 대응에서 핵심은 사후 처벌 강화보다 피해자 보호 체계가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관계성 범죄 신고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관계성 범죄 신고는 43만9382건으로 전년보다 23.1% 늘었다. 이 가운데 스토킹 범죄는 4만4687건으로 39.9% 급증했다. 가정폭력은 28만9368건, 교제폭력은 10만5327건으로 각각 증가세를 보였다.

경찰청과 성평등가족부는 지난해 8월부터 공동 대응 방안을 협의해 왔으며, 올해 4월에는 전국 5개 권역에서 공동 대응 워크숍을 열어 현장 의견을 수렴했다.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관계성 범죄 피해자의 안전 확보와 일상 회복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은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도록 관계기관과 긴밀히 협력하겠다”며 “현장 대응과 피해자 보호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도 지속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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